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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Aug 09. 2018

색온도

온도를 느끼고 싶어요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커튼을 살짝 열어보니 세상은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빛에도 분명 색이 있습니다. 푸른빛의 새벽을 좋아합니다. 새벽의 온도는 뜨겁습니다. 무색의 한낮보다 푸른 새벽이 좋습니다. 막 잠에서 깨어난 세상과 단 둘이만 있는 것 같아서 설렙니다. 무색의 한낮보다 붉은 오후가 좋습니다. 잠들기 직전의 노곤함을 간직한 식어가는 붉은 세상이 편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새벽의 빛을 온전히 느끼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새벽의 푸른색 필터는 금방 옅어집니다. 그 푸른 느낌을 사진 속에 담고 싶습니다.  빛을 담는 작업이 사진인가요?


화이트 밸런스(WB)라는 버튼이 보입니다. 이게 뭐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이런 거 없었습니다. 그냥 가게에서 필름 사서 카메라 뒷면의 뚜껑을 열고 끼워서 찍었습니다. 밖에서도 찍고, 남은 필름은 집에 와서도 찍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색이 틀어져서 안 되는 줄도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야외용 필름(Daylight film)으로 실내에서도 찍었을 겁니다. 남은 필름을 다 찍어야 사진을 뽑을 수 있으니 그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내용 필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텅스텐 필름이라고 있긴 하지만 가게에서 잘 팔지도 않습니다. 실내 촬영할 때 색이 이상하게 나오는 게 싫으면 그냥 흑백 필름을 사서 찍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필름 카메라는 지금처럼 찍고 나면 바로 볼 수도 없으니, 오히려 마음껏 내 사진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두 가지의 사진 생활을 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바라보는 내 머릿속 상상을 즐기고, 사진관 아저씨가 뽑아준 사진을 보고 또 다른 세상을 즐겼습니다. 필름 카메라의 새벽은 푸릅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새벽 색깔도, 새벽의 어두움도 없습니다. 어둡지도, 푸르지도 않게 사진을 잘도 찍어댑니다. WB라는 버튼을 눌러보면 AWB라는 것이 보입니다. 이게 오토 화이트 밸런스 (Auto white balance)입니다. 알아서 색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새벽의 흿푸른 공기와 늦은 오후의 붉은 감성은 사라집니다. 언제나 객관적인 한낮입니다. 그늘의 시원함도 사진엔 없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이니 필름 색감이니 하는 것에 향수를 느끼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파란 새벽빛을 느끼고, 붉게 식어하는 하루를 담고 싶습니다. 내 눈과 닮아 있는 필름처럼 찍어야겠습니다. AWB를 태양에 맞춥니다. 이제 내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카메라가 되었습니다. 항상 정오 12시에 머물러 있는 디지털 세상에 새벽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걸 싫어하는 디지털 세상에 '무상'을 알게 합니다. 차갑게 식어가는 햇살은 내일의 뜨거운 출발을 위한 휴식입니다. 늘 정오의 세상만 존재하는 건 나를 지치게 합니다. 푸른빛으로 바라본 세상도 있고, 붉은빛으로 바라본 세상도 있습니다. 집안의 인공조명과 섞이면서 틀어진 빛의 세상도 우리의 삶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빛을 담는 작업이 사진인가요? 정제된 빛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준 그 시간의 그 빛을 온전히 느끼면서 사진 하고 싶습니다. 화이트 밸런스로 맞춘 세상의 온도가 아니라 내가 느낀 온도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화이트밸런스 White Balance : 한낮의 백생광 (Kalvin 5200~5500) 환경을 기준으로 흰색을 흰색으로 보이도록 맞추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한낮의 자연광을 기준으로 색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전의 햇살이건 저녁의 햇살이건 형광등이건 백열등이건 인지된 기억을 바탕으로 비교적 사물의 색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촬영된 이미지를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색으로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선 주어진 촬영 환경의 빛의 색온도(Kalvin)를 정확히 카메라에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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