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운 Dec 13. 2021

[책]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eving is Seeing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출판 현실문화연구

발매 2011.01.20.



책표지부터 네모 네모 합니다. 틀 속의 틀, 틀 밖의 틀로 구성된 표지 디자인입니다. 시종일관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틀 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틀 밖에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 바라볼 것인가? 또 아니면 틀을 깨고 벽을 부수고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미술'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우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수 있습니다. 틀의 모양은 선형적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동시대에서도 새로운 틀을 제안하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틀(#제도권) 자체를 부수어 버리는, 마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과는 다른 외계의 질서를 차용해서 뭔가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도모해 보려는, 우리의 관념으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노력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틀을 깨는 어떤 행동은 책 표지에서 보듯 더 큰 틀 속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Performance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erforming art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존재하는 세상의 틀을 부수어버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짐 캐리의 어떠한 행동도 짜인 프로그램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아방가르드가 힘을 잃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전시회를 했었죠. '크시슈토프 보디츠코'의 책에 적힌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트루먼 쇼

감독 피터 위어

출연 짐 캐리

개봉 1998. 10. 24. / 2018. 12. 13. 재개봉



"우리는 부검도 적절한 애도도 하지 않고 아방가르드를 생매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방가르드는 해체적 진단 후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아방가르드의 윤리적, 정치적 기운이 우리의 예술적 혈관을 따라 멈추지 않고 순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우리는 부검도 적절한 애도도 하지 않고 아방가르드를 생매장했다. 그 관에 마지막 못을 박은 후, 우리는 더 이상 선포도, 표명도, 통찰력 있는 프로젝트도, 느낌표와 함께 굵은 활자체로 작성한 글도, 강한 어조의 목소리로 말하는 일도 없을 거라는 무언의 협정을 맺었다. 우리는 새로운 유토피아와 통찰력 있는 디자인과 거리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결론을 내린 대로 이러한 시도들은 너무 순진했고 실패했기 때문이다."

       

변형적 아방가르드

저자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출판 워크룸프레스

발매 2017.07.05.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트루먼쇼에서도 틀을 발견하고 문을 열고 나가지만 또 다른 틀 속에 진입하는 것일 뿐이죠. 인용구의 마지막 말처럼 만약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다면 정말 틀을 깨는 것일지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틀 속에서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기원을 쫓아가다 보면 우주의 탄생 이전을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우주의 탄생 이후니까 말이죠. 우주 탄생 이전은 'nothing'이라고 말해준 '스티븐 호킹'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의 블로그 제목도 이렇습니다. '사진은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책 전체 내용의 맥락과는 조금 다른 관점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 '틀'에 대한 고민은 사진을 하면서 따라다닙니다. 강의를 하면서 종종 사진은 사각의 틀 안에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틀 밖의 더 큰 세상의 힌트를 담는 것이 사진일 수 있다고 설명하곤 합니다. 더불어 제도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때가 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미술계의 제도권에 대한 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Society 혹은 Community라는 것도 결국 폐쇄적인 분류작업이고 안전장치를 위한 울타리 치기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한번 분류하고 나면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주류'라는 말과 '비주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틀을 깨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진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Pictorialism, Photo-secession 등의 사진 관련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이 책의 원제가 말하는 의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자 서문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감독 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출연 존 말루프, 비비안 마이어

개봉 2015. 04. 30.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believing is seeing' 는 그 관계가 항상 불안정하며,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은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나, 혹은 믿고 있나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이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믿는 것이 보는 것' 이라는 말은 곧 인간의 선택적인 것이며, 이 선택 행위에 따라서 '보는 것'이 인식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 것임을 말한다.


결국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그 인식의 틀 속으로 사진을 밀어넣고자 했던 것이 Pictorialism이었습니다. 결국 사진분리파 운동은 한계를 내포한 출발일 수 밖에 없습니다.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의 말의 앞뒤를 바꾼 이 책의 제목이 내포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또한 역자서문에 소개한 '존 버거'의 [보는 방법 Way of Seeing]의 발췌문에서 처럼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는 사진이미지를 바라보는 방법에 좀더 집중하면서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미술과 문화전반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입문서가 될 것이라고 소개한 책 내용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등장하는 세부 이야기들에 대해 한단계 깊이있게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입문서입니다. 앎의 한계가 책 속의 세부 이야기를 논하진못해 아쉽습니다. 대신, 목차를 적어두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1. 미술이란 무엇인가

2. 미술과 근대적 주체

3. '예술'이라는 용어

4. 미학 : 예술의 이론

5.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6. 아카데미

7. 박물관

8. 미술사와 모더니즘

9.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10.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매거진의 이전글 [책] 메이드 바이 준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