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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Dec 25. 2021

[책]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다. 사진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고, 수많은 촬영을 했지만, 난 아직도 사진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의 사진은 치열하게 많이도 담아왔지만, 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억지로 참아 왔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 싶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하려 들면 몸부터 '거부반응'이 생겨 할 수가 없었다. 응력이 쌓이고 쌓이면 지진으로 나타나듯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지는 정도다.


나는 종종 꿈을 꾸면 이것이 꿈이라는 걸 직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꿈이면 그 꿈에서 벗어나서 잠에서 깨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가 있는데, 현실이 아닌 그곳에서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삽을 들고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이유 없이 땅파기를 했던 꿈이 생각난다. 꿈속에선 열심히 땅을 파면 잠에서 깨어난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 준 건 땅을 판 결과가 아니라, 내가 삽질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눈이 떠졌다. 내가 지금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나를 혹사시키면서 필드에서 삽질 하기를 10년이 지났다. 그렇게 하면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계속 삽질을 한 것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삽을 내려놓고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현실의 굴레를 유지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아직도 삽질을 멈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막연한 희망고문은 더 이상 하고 있지는 않다.


나도 그랬다.


구본창 사진작가처럼 나도 회사를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었다. 그래도 난 10개월은 버텼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는 회식도 싫었고, 술만 마시면 친한 척하는 상사들도 싫었다. 둘도 없는 우정은 술만 들어가면 생기는가 보다. 임시 저장 장치에만 잠시 저장했다가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기억들이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사진가로서의 작업이란, 사라져 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잡아내어 기록하며 그 매 순간의 공명을 담아내는 것이다. 13쪽


공명


맞다. 나도 울림이라는 표현을 좋아해서 공감 가는 키워드다.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작가적 시전으로 담아내는 것이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낡은 시간을 수집하다


기억의 재생산 치유


이 페이지에서도 나는 많은 걸 느꼈다.

형광 펜으로 줄을 그었다.


"어쩌면 사진가의 일이란 어려서 경험한 시각적 영상을 재확인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16쪽


위의 사진 속 글을 읽어보라.


"어렸을 적 들었던 기억 속의 음을 찾는 것" (이블린 글레니) 16쪽


사진도 그런 것 같다 10년간의 삽질을 끝내고, 내 몸의 '거부반응'이 없을 것 같은 작업이 바로 나의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는 것인 듯하다. 치유라는 키워드도 몇 해 전부터 크게 다가와 학회에서 연구원으로도 참여했었다. 하지만 학회는 학회인가 보다. 대학원(사진전공)을 중도에 그만둔 이유와도 비슷했다. 그냥 나에겐 또 다른 삽질에 불과해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치유라는 키워드는 아직도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아마도 나의 사진은 기억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일부터 시작하게 되려나 보다. *내년(2022)부터 다시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예술치료교육및상담' 석사과정이다. 직관으로 느끼고 있는 답의 풀이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29쪽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단단하게 각인되어 온 그 흔적들을 확인하고 찾아내는 작업. 나의 일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나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처럼 들렸다.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꿈속에서 만난다. 늘 혼자였던 어린 시절 자정이 넘어서까지 혼자 잠들지 못하고 부모님을 긴장하면서 기다렸던 기억. 애국가가 나오면 텔레비전은 끝이 난다. 그때부터는 야구 방망이를 쥔 손에 더욱 땀이 난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다. 우리 아파트는 복도식이었고, 우리 집은 1호 집이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 말고는 우리 집 앞 복도를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그림자가 창문 너머로 그려지면 두려움은 커지고 몸을 숨겼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몇 순간들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남아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엄마 아빠의 구둣발 소리에 큰 숨을 몰아쉴 때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셀프 포트레이트


구본창 작가는 유학시절 독일에서 가장 많이 수행했던 과제가 '정물'과 '셀프 포트레이트'였다.라고 말했다. 셀프 포트레이트는 "너 자신을 생각해라. 너 자신을 알라"는 자아성찰의 한 방편으로 학생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테마였다. 고 한다. 47쪽


난 내가 개인 작품을 하려고 하면 "몸의 거부반응"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안드레 겔프케 (1947~)


참 좋은 사진들이야. 그런데 이 사진들은 어느 유럽 작가가 찍은 것인지 한국에서 건너온 유학생이 찍은 것인지 알 수가 없네. 한국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가 없어. 자네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


구본창 작가에게 해준 조언의 말이다. 120% 공감한다. 나도 미국에서 배운 사진으로 다분히 미국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진 같지 않아요. 외국작가 사진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했으니 당연한 평가라고 생각하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은 그야말로 삽질하고 있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도 안드레 겔프케의 말에 뜨끔 했다. 내 사진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공허함이다. 나를 찾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심하게 커진다. 나를 찾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이 확실하다. 지금도 두려운 마음이 드니까 말이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겔프케


징검다리


사람과의 관계 형성엔 내가 구본창 사진작가보다 더 중증인가 보다. 사람과의 인연의 징검다리는 건너기엔 너무 거리가 멀어 발이 닫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모임이란 걸 거의 나가본 적이 없다. 있어도 피한다. 편한 자리일수록 난 더 힘들어한다. 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편한 만남의 자리일수록 나에겐 스트레스다. 송년회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넘처나는 너무도 편한 자리였지만, 나는 돌아오는 길에 두통과 구토와 식은땀에... 다음날까지 감기 걸린 사람처럼 힘들어했다. 이런 증상은 더 심해진 것 같다. 나를 면접하는 자리이거나, 사진을 강의하는 자리이거나, 촬영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선 난 힘들어하지 않는다. 기가 센 편에 속한다. 하루에 5타임 10시간을 강의해도 거뜬한 사람이다. 여러 스텝들과 하루 13시간을 촬영해도 혼자 쌩쌩하니까 말이다.

피운
피운


연출사진 (Conceptual photography)


나도 초반엔 이런 연출사진들을 찍으려고 애를 썼다. 내 생각을 사진으로 어떻게든 표현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억지스러움에 내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켜 모든 걸 중단하게 되었다. 나를 치유하기보다는 나를 더 혐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내 생각을 찍지 않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관념적인 억지스러운 연출사진으로써의 접근이 아니라,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하고 있다. 변명 같지 않은 사진 진짜 내 사진을 담아내길 나도 기대하고 있고, 설레는 마음도 있다. 나를 알아야 세상 밖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아직 사진에 있어선 초심자다.




<열두 번의 한숨> 구본창 80쪽


실험정신과 시대를 앞서간 그의 작가적 시선

<태초에> 시리즈 1998 
136p
90년대 상업사진이라고 하기엔 시대를 앞서간 그의 작가적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


이 책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책을 사서 읽어보길 권합니다. 작가의 biography 같은 이 책을 통해서 사진을 하는 작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구본창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명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상을 보는 눈


그는 '대상을 보는 눈'을 키우라고 말합니다. 일상. 소소함. 작은 울림.

그는 사진으로 그 울림을 키워내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재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작가적 시선이 무엇인지를 실천하고 있는 구본창 작가를 통해서 작지 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비누 시리즈 187쪽


아기 사진 무작정따라하기



나도 책에서 작가적 시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특별한 것을 평범한 시선으로 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을 특별한 시선으로 담아낼 줄 아는 것이 작가적 시선이라 하겠다.


그냥 늘 쓰다가 거품이 나지 않으면 새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버려지는 비누 조각에서도 구본창 작가는 '작가적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작품사진을 한다고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순간만을 기다려 촬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늘 조금은 한 발 떨어져서 여행객의 시선으로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다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우리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흔적' 들이니까 말이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

저자 구본창

출판 컬처그라퍼

발매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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