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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Dec 12. 2021

[책] 메이드 바이 준초이


       


메이드 바이 준초이

저자 준초이

출판 디자인하우스

발매 2004.07.16.


2주에 한번 꼴로 중고서점에 갑니다. 격주로 강의하는 곳이 있는데, 오가는 길에 중고 서점이 있어 자주 들러 보물 찾기를 합니다. '메이드 바이 준초이'라는 책도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최고의 광고사진가로 소개되어 있기도 했고,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텍스트로 꽉 채워진 내용에 우선 끌렸습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하는 거긴 하지만, 그래서 사진집에 관심을 갖는 게 맞지만, 개인적으로 사진가(예술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작가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라면 더욱더 관심이 갑니다. 사진은 가면(persona 페르소나) 같아서 그 속내를 알기가 어려울 때가 많고, 위장술에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작가적 양심'은 작가 스스로 양심선언하기 전에는 알기 어렵습니다. 평론가의 책이었다면 지나치게 수려한 글들이 오히려 덜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예술가의 긴 글이기에 빨리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입했습니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았을까?....


평론가의 글과 예술가의 글에는 한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평론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을 이야기한다면 예술가는 그 도시 속을 걸어 다니면서 글을 씁니다. 전망대에선 도시의 매연도 재래시장의 비릿한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부딪힘도 없고, 강한 햇살에 눈이 부시 지도 땀이 나지도 않습니다. 세상을 올려다볼 수도 없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내려다보면서 그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패턴을 찾고 규칙화합니다. 대단한 법칙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 역할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예술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기록합니다. 다른 장소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르게 기록합니다. 이정표를 무시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합니다. 산발적인 기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직접 땅에 몸을 붙이고 느낀 기록들입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첫 페이지부터 에필로그까지 한달음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준초이 작가는 글을 잘 씁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남은 페이지 수가 적어질수록 줄어드는 텍스트가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나 역시 사진을 하고 있기에 격하게 감정 이입이 되었나 봅니다.


그의 사진 인생은 한마디로 사건의 연속입니다. 동쪽에 답이 있으면 서쪽 길을 택합니다. 글을 통해서 전해지는 지난 과거의 무용담은 드라마틱 합니다.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무수한 고뇌와 숨 막힘이 느껴집니다. 저 또한 늘 반대로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후회도 크지만 그 선택이 나의 성공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애써 노력하고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나의 속내를 그도 알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일본 예술대학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끝냅니다. 학업성취뿐 아니라 사람도 많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중앙대학교로부터 교수자리 제안도 뿌리치고 미국행을 선택합니다. 글쎄요~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그를 '바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글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학교로 가~" "학교로 가~" 속으로 외치면서 글을 읽어내려갔어요. 교수직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다시 시간을 두고 하고 싶은 사진을 하면 안 될까? 책 속의 젊은 준초이에게 당부하고 있었어요. 미국에서의 학업과 포토그래퍼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겐 그의 선택이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나의 귀국 또한 준초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준초이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광고사진작가로 성공하긴 합니다.




그가 선택한 과거는 옳고 그름은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준초이를 있게 한건 그가 선택한 과거의 행적들 때문이니까요. 만약 그가 정답 같은 교수직을 선택해서 사진 생활을 이어 왔어도 그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사진인 준초이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성공한 사진가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걸 확실할 수 있는 건 그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중심엔 사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하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겁니까?, 가수가 되고 싶은 겁니까?" 그는 사진을 아이템으로 교수라는 직장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광고계에서 성공한 사진가입니다. 준초이는 이제부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 속에 담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 사진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고마움을 '사람간의 사랑'을 표현한 사진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준초이 만큼의 치열함도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보면서 언어로 유희하기 위한 전망대 티켓도 아직 구매하지 못했습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1층 로비에서 쭈뼛쭈뼛 서성이는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진가도 비평가도 스쳐 지나갑니다. 준초이의 '메이드 바이 준초이'를 통해서 나의 위치와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처럼 제도권의 틀로 규정된 사진가의 길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사진 인생을 살아가는 준초이를 응원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엮은 책인듯합니다. [해녀와 나] 도 궁금합니다.





       


해녀와 나

저자 준초이

출판 남해의봄날

발매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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