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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Dec 11. 2021

[책] 사진을 읽어드립니다.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

저자 김경훈 

출판시공아트

발매 2019.03.21.




김경훈 기자가 찍은 멕시코 국경의 '캐러밴 모녀' 사진


김경훈이라는 사진기자를 이 사진 한 장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풀리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김경훈 작가를 검색으로 뒤져 보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6년의 숙성 과정을 거쳐서 출간된 <사진 읽어 드립니다> 책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14장 '사진의 미래'에도 이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아마도 오랜 기간 동안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출판사에서는 속앓이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에 퓰리처상을 받은 이 사진을 포함할 수 있어서 오히려 김경훈 기자에게 감사의 맘이 더 커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카불의 사진사'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정은진' 기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이 소식을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축하의 마음과 함께 2006년 아프가니스탄으로 달려가지 못했던 그때의 맘이 다시 떠오르지는 않았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라고 책표지에 적혀있습니다. 딱! 맞습니다. 본적 있는 사진들이 제법 많습니다. 때로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앎의 폭이 넓어졌고, 깊어졌습니다.


1장은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거사진들로 시작합니다. 보도사진의 힘에 대해서도 물론 느꼈지만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역사책 속의 한 페이지 정도로만, 알아야 할 역사 지식 정도로만 기억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책 속의 증거사진을 보면서 가슴 먹먹해졌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의 과거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고통의 현실이고, 그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시는 스물두 분의 할머니가 생존해 계십니다. (2019년 3월 기준) 개인적으로 지난 과거 사진을 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사진 속의 기쁨 혹은 슬픔 등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흘러간 옛 사진을 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데, 그래서 아픈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살아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는 생존해 있는 '증인'으로서의 무게까지 지고 계십니다. 책에는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아픈 과거 역사이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정은진 사진기자의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라는 책 속에서도 아프리카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만행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 여성들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책 제목이 '눈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름은 눈물 입니다

저자 정은진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08.10.07.


2장은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조금 깊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일 겁니다. 사진을 전공한 사진가라면 '로버트 카파'를 모를 리 없습니다. 저 또한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은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김경훈 기자의 글로 만난 로버트 카파는 훨씬 가까이 다가옵니다. 범접할 수 없는 역사 속 인물로 공부하듯 암기했던 로버트 카파가 아니라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시대착오적인 공감이 느껴집니다. 김경훈 작가가 쓰는 글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지겹도록 봐왔던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다시 읽힙니다.

12장에는 셀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진 속 셀카의 주인공은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넷째 딸 아나스타샤가 남긴 셀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나스타샤]는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로버트 카파와 사랑에 빠졌던 '잉그리드 버그만'입니다. 김경훈 작가의 글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더 많이 짝사랑했다는 것을요. 이 사진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에서 잠깐 혼돈을 느꼈습니다. 배우로서 알고 있었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내가 알고 있는 사진가 로버트 카파와 연인이었다는 사실에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사실에 시대를 다시 매칭해보기 시작했고, 또 다른 역사적인 사실로서 셀카 속 주인공(아나스타샤)을 영화 속에서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을 생각하면서 시대가 마구 뒤섞이는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경훈 작가의 글을 읽고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다큐멘터리도 보았고, 영화 아나스타샤도 보았습니다. 정말 즐거운 앎의 확장이었습니다.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

감독 스티그 비요크만

출연 잉그리드 버그만, 알리시아 비칸데르

개봉2015. 10. 15.


       

아나스타샤 

감독 아나톨 리트박

출연 잉그리드 버그만, 율 브린너, 헬렌 헤이즈

개봉 미개봉



사진 수업을 할 때 로버트 카파를 종종 언급합니다. 그가 했던 명언을 종종 소개합니다. "If your picture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 영문의 맛을 살린 번역이 참 힘듭니다. 어떤 식으로 번역해도 원문의 맛이 살아나진 않지만,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사진이 부족하다면, 다가가지 않아서다". 뷰 파인더를 통해서 내가 담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해질 때 점점 꽉 차게 촬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가가게 됩니다. 초심자와 프로의 차이를 단순히 살펴보면, 대체로 초심자의 사진은 넓습니다. 반면에 프로의 사진은 대체로 클로즈업된 사진이 많습니다. 담고 싶은 것이 분명하면 다가가게 됩니다. 한 사람을 촬영해도 내가 담고 싶은 것이 느껴집니다. 느껴질 때 다가가게 됩니다. 인물의 전체를 담을 필요도 없습니다. 초심자로 멀리서 바라본 역사를 김경훈 작가가 적극적으로 줌인하여 다가가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사진학교에서 '할리우드 글래머'라는 이름으로 20세기 초중반의 촬영 방식으로 촬영 수업을 했습니다. 그때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을 종종 봤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들의 흑백 사진을 많이 봤습니다. 그녀가 혹은 그가 누구인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라이팅 패턴에만 집중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사진 속의 인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클래식 할리우드 포트레이트'란 이름으로 가끔씩 수업합니다. 뜨거운 텅스텐 조명 아래에서 포즈를 취해보고 촬영법을 학습하는 것이 지금은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텅스텐 조명을 이용해서 촬영 수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클래식한 분위기를 모사해보고 할리우드 글래머 촬영을 흉내 내기 위함은 아닙니다. 지속광으로 사진을 공부하다 보면 빛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사물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게 됩니다. 인물의 라이팅 패턴에 신경 쓰게 되며, 인물 각자의 특성을 파악하면서 촬영하는 방법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 느끼기 힘든 묵직한 거친 촬영이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14장 '사진의 미래'에서는 시각장애인 최형락 군의 한 장의 사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가을을 거닐며 © 최형락


시각 장애인이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찍어도 볼 수 없으니 그렇게 들릴 만도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글을 읽고 다시 살펴본 최형락 군의 사진 속에서 저도 우리가 강아지 '쿠쿠'랑 '꼬미'가 마구 줄을 당기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담는 것이 사진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는 힘이 사진 속에 있습니다. 조그마한 틀 속에 너무 큰 세상과 우리의 마음까지 억지로 담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닌지요? 무엇을 찍어도 좋습니다. 내 마음의 힌트면 충분합니다.




이 책의 첫 느낌은 '어, 나도 대충 아는 내용들이 많네~'였습니다. 역시나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로 알고 있으면 족할 내용으로 생각했던 많은 내용들이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김경훈 작가가 소개한 14가지의 이야기들이 책을 읽고 난 후 더 궁금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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