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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Dec 05. 2021

[다큐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계속 내 자신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감독 : 존 말루프

개봉 : 2013 미국




지금에서야 Vivian Maier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진집과 책을 함께 구매하고 싶었지만, DVD만 우선 구매했습니다. 온라인 중고서점까지 뒤졌습니다. 하지만 한번에 모든 것을 구매 하기엔 여전히 부담가는 금액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여건은 마음의 속도만큼 내달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왜 작품을 혼자만 간직하고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까를 이야기하지만, 난 그녀가 이해 됩니다. 세상에 너무도 간절히 소개하고 싶었을 겁니다. 내 사진이 제법 훌륭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을 겁니다. 이 사진으로 돈도 많이 벌고 싶었을 겁니다. 그 희망으로 삶을 버텼을 겁니다. 시도했던 흔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자신 알리기'가 이해됩니다. 또한 가난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가난때문에 필름을 현상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비비안도 보지 못한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http://www.vivianmair.com


공식홈페이지를 살펴보세요. 'Contact sheet'이란 용어가 낯설겠지만, 살펴보세요. 인스타의 피드같습니다. 롤라이플렉스 카메라의 판형은 인스타 판형처럼 1:1 정사각형입니다. 그녀가 지금시대에 있었다면 인스타 스타가 되어있을까요? 가능성은 좀더 열려있어보이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비비안 마이어처럼 생산만 하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작가들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알리는 방법은 뻔하지만 잘 안되는 미묘한 이유가 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질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존 말루프 : 영화 프로듀서

존 말루프란 사람의 우연한 발견과 적극적인 소개로 사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양도 방대합니다. 가슴뭉클하게 만들고 혼자서 한숨짓게 하는 이유는 공식홈페이지에서 본 사진이 너무 좋아서 입니다. 아직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꼭 사진집을 사서 볼 생각입니다.




'예술가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환자다.'


나는 이렇게 예술가를 정의하곤 합니다.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환자' 예술활동을 하는 이유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인정받고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안하면 견딜 수 없어서 하는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내 안의 어떤 부분(무의식의 영역이라고 해도 좋습니다)과 제도화된 이성적인 이 세상(현실이라고 해도 좋습니다)과의 연결통로가 사진 촬영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 유일한 통로를 통해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삶을 치유하고 버텼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필름을 현상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현상을 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과의 소통은 이미 사진을 촬영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왜 그랬을까? 를 우리의 기준으로 고민하지 말았으면...

http://www.vivianmaier.com/gallery/self-portraits-color/#slide-6 헐리우드 스타와 중첩된 비비안의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기준과 틀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이상하게 여기거나 옳지 않을 일로 판단해 버리는 것 같다. 틀 밖으로 밀어내기만 해놓고선 그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하고 안도하는 것 같다. 왜 모든걸 우리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설명해 내려고 하는가? 틀 밖의 세상이 더 크다. 사진은 사각의 틀 속에 세상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틀 밖의 더 큰 세상을 이야기 한다. 한때 젊은 여심을 자극했던 원태연의 시가 떠오른다. 손을 뻗어 원을 그려보라고 했던 시가 떠오른다. 그 원을뺀 나머지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했던 시가 떠오른다. 사진도 그런 것 같다. 사각의 틀 속에 다 담아낼 수도 없고 다 담으려 할 필요도 없다. 사각의 틀을 제외한 나머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가지 궁금한점?


그녀에게 삶의 목표가 따로 있었을까? 보모로 생계를 이어가고 사진으로 삶을 버티면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루고 싶었던게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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