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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Sep 01. 2023

[책] 오직 두 사람 / 김영하

김영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첫 소설집 <호출>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톡톡 튀었죠. 내가 남몰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작가가 TV 광고에 나오기 시작했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어요. 그를 육성으로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지만, 알려진 만큼 소외감이 커졌어요. "김영하 작가 아세요?"라고 말문을 열면서 그의 작품 속 이야기를 하며, 그와 내가, '오직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아는 채 하는 맛이 있었는데 말이죠.ㅎㅎ


유명인이 되어버린 헤어진 연인의 SNS를 몰래 훔쳐보는 것처럼 그의 책을 주문했어요.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보고 싶은 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편지 형식의 글이에요. 나는 주인공 현주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있었던 것 같아요. 중간에 현주가 갑자기 '언니'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누구를 부르는 거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어요. 잘 모르겠지만, 현주는 언니에게 쓰는 편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일기를 쓰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엄마도, 동생 현정이도, 아빠도 채워주지 못하는.. 현주에겐 언니가 필요해 보였어요.


중간쯤에 현주의 삶과 99.9% 일치하는 삶을 사는 젊은 여강사가 등장하는데, 배다른 여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어요.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늘 여자한테 버림받아 외로운 아빠는 '오직 두 사람'이고자 하는 반쪽 대상을 딸에게서 찾는 듯 보였죠. 


이야기의 시작은 희귀언어를 사용하는 뉴욕에 거주하는 언니와 다른 한 명, 오직 두 사람을 가상으로 설정하고, 그 둘은 말다툼으로 의절하고, 한 사람이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됩니다. 남아있는 사람의 고독을 현주는 상상해보고 있어요. 결국 희귀언어를 사용한 오직 두 사람은 현주와 아빠가 되었고, 아빠가 세상을 먼저 떠나, 현주는 고독 속에 언니에게 쓰던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홀로 남겨진 고독 속에서 현주가 찾은 '오직 두 사람'은 편지를 받아보게 될 언니이고, 그 언니는 현주 자신이란 생각이 듭니다. 편지의 마지막 글에서 저도 안도하게 됩니다.


언니, 전 이제 괜찮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좀 정리되는 대로 연락 한번 드릴게요. 그때까지 언니도 건강히 잘 지내세요.

현주 41p


나도 어릴 때 누나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죠. 중학생 때 누나한테 편지를 쓴 적도 있어요. 고등학생 때였는지도 몰라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을 때니까요. 그때 저도 마지막을 저렇게 썼던 것 같아요. '누나, 누나한테 편지 쓰고 나니까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견디기 힘들면 또 편지할게~ 그동안 잘 지내 누나!' 


내 말을 언제나 들어준, 나와 희귀언어로 소통한 유일한 한 사람 누나!






아이를 찾습니다


잃어버렸던 성민이가 다시 돌아온 직후, 성민이의 친모인 미란은 실족사 하게 됩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충격으로 퇴행성 조현병 정신 질환자가 되어버렸죠. 정신은 오락가락했습니다. 이따금씩 제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었죠. 미란은 성민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잠시 정신이 돌아오는 듯 자극을 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후 미란이 실족사 했다는 경찰로부터의 전화가 윤석에게 걸려왔고, 난 실속사가 아니라, 미란이  자살했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엔가 살아있을지도 모를 성민이를 생각하면서 죽지 못해 살았고,  죄책감에 그녀는 미쳤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은 감사히 살아 돌아왔고, 성민이에게 더 이상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짐만 될 자신을 또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모성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윤석은 성민이와 시골살이를 시작하지만, 성민이는 가출하게 되고, 성민이와 함께 가출한 여자아이가 성민이를 찾아 집으로 옵니다. 성민이가 가지고 나갔다는 500만원에 30만원을 더 보태어 여자아이한테 건네줍니다. 여자아이는 성민이의 아이라며, 키울 형편이 못되어 맡긴다며, 잘 부탁한다는 쪽지를 아기와 함께 남겨놓고 사라집니다. 다 떠나고 '오직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윤석에겐 그 아이는 잃어버렸던 성민이 일 수도 있고, 죽음을 택한 아내 미란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석은 오히려 그렇게 아픔을 씻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옥수수와 나


스스로를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를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가까스로 납득한 이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다시 병원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의사의 말이에요. 대답이 압권입니다.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라고 이 남자가 말해요. 사실 이 대목에서 '정말 천잰데?'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그 남자는 다시 병실에 갇혔을 듯합니다.


소설을 쓰는 박(만수) 선생이 등장합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친구와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 두 명도 등장합니다. 둘 다 시를 씁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X-와이프의 이름은 '수지'입니다. 수지와 낳은 딸 쫑이가 언급됩니다. 미국 대학에 합격해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지가 다니는 출판사를 인수한 골드만삭스 출신 사장이 나오고, 그의 별 겨 중인 아내 박영선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건 '수지'와 '쫑', 박영선만이 이름이 있고  나머지는 이름이 없습니다. 수지의 성이 이씨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실존 인물만 이름이 언급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했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단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쫑이의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글쓰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고, 위의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매우 속도감이 있고 흥미롭습니다. 골드만삭스 출신 출판사 사장의 뉴욕 아파트에서 별거 중인 사장의 아내 박영선과는 만난 그날부터 섹스와 글쓰기가 신들린 듯이 열흘 동안 미친 듯이 꿈처럼 반복됩니다. 박만수는 처음 겪어보는 신들린 타이핑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뮤즈에 대한 열망이 있었나 봅니다. 


열흘 만에 깊은 잠에 들었는데, 누군가 관자놀이를 찔러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사장이 눈앞에 있었고, 그의 아내와 한 이불에 있는 상황을 들키게 됩니다. 권총과 약 중에 선택할 것을 강요받게 되고, 자기가 저자이고 주인공이라 말하며,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거라고 내가 종결자라고 말합니다. 


약을 먹었지만 죽지 않고 있음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뜹니다.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은 꿈속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박만수가 누워있는 곳은 뉴욕에 있는 사장의 아파트가 아니라, 병실로 보입니다. 닭으로 변한 사람은 간호사와 의사였을까요? 약 먹을 시간이 되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성공을 위한 소설 쓰기에 대한 강박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자신의 무능으로 딸아이의 유학자금을 대주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을 수도 있겠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로 방향을 전환한 것을 출판사 사장을 골탕 먹이기 위함으로 나오지만 이곳의 논리와는 거리가 있는 꿈속의 황홀경에서 막힘없이 써 내려가기엔 그런 설정이라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에서는  전화기 버튼조차도 잘 눌러지지 않고, 이곳의 논리를 적용하려면 마치 슈퍼 슬로모션이 걸린 마냥 느려지는 느낌을 종종 받으니까 말이죠. 


가끔 꿈에서 할리우드에 진출한 사진작가가 된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영어는 물론 유창하죠. 안 만나본 스타가 없고, 최근에도 그런 꿈을 꾸었는데, BTS 정국이와는 매우 친한 친구로 나오기까지 했죠. 인천공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다른 국가에서 일정이 있다는 매니저의 말에 바로 출국하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죠. 스튜디오 길거나에 요즘 건물이 새로 올라가서 발파 아음이 장난이 아닌데요. 꿈에서는 조명 터지는 소리 역할을 했던 거였어요. 낮잠이었고, 깨어나니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였죠. 다행히 정신병원은 아니었어요.ㅎ






최은지와 박인수


최은지와 박인수 편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출>때도 김영하 작가가 이렇게 글을 썼었나?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작품에 대한 기억은 톡톡 튀는 글쓰기와 반전 매력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자꾸 어떤 반전을 기대하면서 글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수사 담당이 된 마냥 글을 자꾸 쪼개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결말을 열어둔 거 아니야?" "반전이 있기는 한 건가?" "작가의 생각이 왜 이렇게 궁금하지?" <호출>때는 아귀가 맞아들어가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숨은 의도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하면서, 등장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헤매었다. 작가의 술책인 건가? 갑자기 내가 형사가 된 느낌이 들어, 형사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타난 모든 인물들 그리고 조금의 단서가 될 만한 글자를 자꾸 짜깁기한다. 근데 이게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꼭 읽어나갈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최은지는 그냥 최은지고, 박인수는 박인수면 되는 거 아니야? 늘 단편은 마지막 페이지가 중요했었지! 거기에 답이 있고, 반전이 있어! 그걸 알아채는 쾌감이 나에게 단편을 읽게 하지! 제목도 놓쳐서는 안되고 말이야! 예전엔 단편소설을 읽을 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었는데 말이지. 그냥 읽다 보니 단서를 찾아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가면 밑줄 그은 내용들이 드디어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버리거든!  난 아귀가 맞는 단서들의 조합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최은지를 진짜 사랑한다는 직원을 불러 해고 통지를 하고, 위선이여 안녕!이라고 백지에 적은 마지막 글에서 아기 아빠가 누군인지 짐작했다!






신의 장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스키너가 쥐에게 음식을 간헐적으로 주는 실험이 생각났어요. 또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이 떠올랐어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꿈속에서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찾았었죠.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꿈속에서 꿈을 벗어나기 위해 땅을 팠어요. 땅을 파면 잠에서 깨어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무튼 진짜로 잠에서 깨어났죠. 인셉션의 '킥'하고 비슷해요. 크게 가능성 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방 탈출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꿈속에서 내가 꿈을 벗어나기 위해 찾은 방법과 비슷해 보였어요. 탈출을 한 것 같지만 꿈이었고, 이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만 인셉션처럼 꿈속의 또 다른 꿈일지도 모르죠~. 현실과 꿈의 중간에 있어본 기억이 있어요.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머리맡에 알람시계가 있었고, 그 옆에 노래 카세트테이프를 정리해둔 주상복합 건물 같은 철제 정리대가 있었어요.   제일 위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부터 하나씩 하나씩 빼기 시작했어요. 전부다 빼내면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하나씩 빼는 걸 포기하고 그 철제 건물을 무너뜨렸어요. 한 번에 카세트테이프를 다 빼기 위해서였죠. 확~하고 무너지는 순간 진짜로 잠에서 깨어났어요. 내가 뭔 짓을 하고 있었나 싶어 헛웃음이 났고, 옆에서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알람 소리를 재빨리 껐어요. 전자식 알람 소리는 그래도 들을만하지만 이 시계는 시계 머리 쪽에 마치 헤드폰을 쓴 것처럼 종이 달려있고, 그 가운데의 쐐 뭉치가 양쪽의 종을 사정없이 내리치면서 도저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자명종이었어요. 어지간히 깊은 잠을 잤었나 봐요.






작가의 말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써놓았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김영하 작가가 뉴욕에서 녹음한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였나 보다. 정확지는 않지만,  그가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칼럼을 쓰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흔적을 남기고 단서를 던져주면 독자들은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때론 의도한 것보다 더 깊은 생각을 펼쳐내기도 하면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소설을 쓰는 그에게, 팩트를 제시해달라는 요청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틀 밖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소설가가 문명 속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나열을 그 속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로 단순히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오래 일하기는 힘겨웠을 것 같다. 







내 후기


작가가 뿌려놓은 흔적들을 내 방식대로 채집해서 또 다른 소설을 쓰며 읽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나의 짜깁기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글 속에서 논리를 찾게 되면 희열을 느낄 때도 있다. 작가의 생각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짜놓은 프레임의 안과 밖을 스스로 넘나들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보는 것 같다. 중/단편 소설은 자꾸 이런 식으로 읽게 된다. 조금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반전이 있는 단편을 좋아했고, 김영하의 작품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니까 말이다. 모든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는 습관을 고치긴 해야 하지만 말이다. 


김영하 작가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어떠한 반전도 기획하지 않은 그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만나고 싶다. 그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남긴 말처럼 글에서 그냥 우리 서로 만나고 느끼고 싶다. 



오직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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