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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Sep 02. 2023

[책]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책의 제목이 왜? 유혹하는 글쓰기인지 궁금했고, 표지와 번역된 제목이 촌스럽다고 처음엔 느꼈다. 여전히 표지 디자인엔 만족하지 못하지만(그래서인지 다른 표지의 개정판이 있긴 하다^^), 책 제목 On writing의 번역은 충분히 만족스러워, 번역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총, 균, 쇠>를 번역한 김진준 번역작가다. 그 의 번역에 감탄하고 감사하면서 읽었다. 163p 스티븐 킹은 언급한다. '글쓰기는 유혹이다'


이력서


스티븐 킹은 자서전이기보다는 이력서 정도라고 말하면서 책의 앞부분에 자신의 성장과정을 적어두었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소설 같은 이력서였는데, 난 이미 스티븐 킹의 글의 유혹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글을 참 맛있게 쓴다. 번역이 또한 압권이다. 식욕을 매우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를 먹어버려서,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진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마구마구 당긴다.


연장 통

수동태를 피해라.
부사를 피해라.


글쓰기는 영어나 한글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말을 수동문으로 쓰면 선생님께서 영어식으로 글을 쓰지 말아라, "우리말엔 수동태가 없어!"라고 지적했던 기억이 있는데, 영어 문장도 가능한 능동으로 쓰라고 지적하고, 예시를 보여준다. 문맥에서 독자가 충분히 부사의 표현을 느낀다면 문장에서 부사를 뺄 것을 조언한다. 불필요한 사족은 가능한 정리해서 간결하게 쓸 것을 지적하는데, 우리말 글쓰기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우연히 학교 잡지에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한 페이지 분량을 채우는 데 반나절은 걸린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길지도 않은 글에 많은 고급스러운 어휘를 채우려 애썼고, 말 늘이기와 예쁘게 치장하기로 덕지 덕지 지저분한 글쓰기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전공서적을 포함한 참고 서적엔 한자 투성이었고, 그런 한자어가 섞여 있는 책을 읽으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땐 그런 어려운 책이 대학생이 읽어야 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다. 나의 글쓰기에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대학생 때 나의 글은 내가 읽어도 뭔 소리인지 복잡하다.


사진을 볼 때도 간결한 사진이 더 끌린다. 소위 말하는 Conceptual photos 개념 사진이라고 하는 것에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개념 사진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기보다는 개념 사진이라는 것을 대놓고 노출시키는 사진이 싫어진 것이다. 사족이 많다.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사진으로 설명하려고 애쓰는 사진은 조금 역겹기까지 하다. 어차피 이미지이기에 설명이 친절하지도 않다. 마치 한자어를 섞어서 사용하면 고급스러운 글쓰기가 완성되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난 책에서 설명한 스위프티(Swifty) 대화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재미있는데 조금 지내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 표정을 짓거나, 감탄을 하면, 그는 나의 표정과 감탄사를 말로 설명해 준다. 마치 배우들을 위한 '지문'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내가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눌 때,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면, '우리 작가님 지금 실망하신다.'라고 말하면서 내 감정을 표현해 주고, 혼자 일을 하면서 한숨을 살짝 쉬면서 사무실 천정을 바라보면, '우리 작가님 지금 고민하신다'라고 또 나의 마음을 잘도 읽어준다.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를 떠올려보자. 주인공 배우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으로 우리에게 이야기 속 지금의 심정을 전달해 준다. 그런데 이때 자막으로 혹은 누군가의 내레이션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 준다면 어떨까? 감정이입해서 눈물 나려고 하다가도 산통 다 깨질듯하다. 스티븐 킹은 글을 쓸 때도 이러한 사족을 금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창작론

플롯과 줄거리


대부분의 일을 계획적으로 하는 일이 없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일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이 반가웠다. 플롯을 기획하기보다는 상황을 써 내려가는 방식이다. 나는 플롯을 짤 능력이 없어 늘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곤 한다. 한 가지 고쳐야 할 점은 삼천포로 빠지는 걸 막아야 한다. 그걸 작가는 줄거리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롯과 줄거리에 차이를 설명하고 있고, 플롯보다는 줄거리를 놓치지 않기를 강조하고 있다. 줄거리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 유일하게 강제적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매일매일 일정량의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긴장감을 유지한 채 흐름을 잃지 않으면서 글을 써나가는 방법이다. 또한 글을 쓸 때는 지나치게 묘사하는 것을 피할 것을 충언한다. 나도 너무도 많이 경험한 일이다. 내 글에 취해서 지나치게 많은 묘사를 하다가 내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세부 묘사를 신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뻑!!


작가는 소설의 3가지 요소로, 서술(narration)묘사(description)대화 (dialogue)를 언급한다. 작가는 플롯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살아서 움직인다. 어떻게 사건이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잘 받아 적을뿐이다. 나는 반갑게 동의한다. 나 역시 특정 상황에서 글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상황 혹은 사건에서 시작되어 또 다른 상황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을 알아가게 되고, 어느새 나는 아쉬운 채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에선 중간중간에 만나게 되는 엑스트라 수준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혹은 특정 장소에 대해서도 언젠가 만나게 될 인물 혹은 다시 찾게 될 장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기대하며 읽게 된다.



대화(dialogue)


소설의 3요소 중 대화를 언급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내레이션은 하겠는데 주고받는 대화를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거 쉽지 않아 보였다. 수준 높은 대화문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등장인물의 성격은 물론 그 상황이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전해온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영화로 곧잘 만들어진 이유가 이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대화문의 비결도 진실이다. - 228p


속도


소설을 풀어쓰는 이야기의 속도에 대해서 언급할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속도에 대한 출판계의 믿음엔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첫 단행본을 내고도 다음 책을 이어서 쓰지 못하고 있는 나의 현실에 갑자기 빠져들었다. 작가의 글에 공감하면서.. 난 내 생각을 했다. 나 같은 사람도 버텨나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통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통의 정의는 조금 달라서 그네들의 구미를 맞출 수가 없다. 억지로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나답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나를 도와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인플루언서 /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것이 정답처럼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누가 요즘 지루하게 글을 읽겠느냐며, 영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유튜브 영상 제작을 제안한 사람/기업도 있다. 오프라인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팬데믹 상황은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열자고 압박한다. 출판사는 판매가 어느 정도 보장된 인플루언서에게 책을 출간해 준다.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출간할 책의 기획 의도와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었던 출판사는 이제 찾기가 어렵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는 눈치다. 나의 SNS 계정 주소만이 궁금할 뿐이다. 모두 다 큰 강의 유람선을 타려고만 한다. 그게 흐름이니까.. 강의 지류엔 작은 배만이 갈 수 있는데 말이다.


간결하고 흐름이 빠른 글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이라면 소설을 포기하고, 사용 설명서를 쓰는 일을 구하면 그만이라고 작가는 보충한다.



스토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작교실


작가는 창작교실에 대한 견해를 장단점을 들어 얘기하지만, 장점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어장관리와 그 자체로서의 흥미로운 이벤트라는 점을 빼면 창작을 위해서는 그다지...이다. 사진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면이 있다. 난 취미 사진을 교육할 때 촬영 방법에 대한 교육은 사실상 최소화하는 편이다. 사진을 배우러 온 수강생에게 심지어 '사진은 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카메라의 작동법을 익혀야 하고,  디지털 암실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사용법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사진교실을 열어 이런 내용만을 강의하는 것은 강사에게 매우 유리한 교육 방법이다.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 문법 수업은 강사에게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뭔가 체계적으로 배운 것 같으니 만족도 또한 높다. 하지만 언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었다면 글쎄다. 탄탄한 커리큘럼으로 무장한 사진 문법교육은 많은 지식을 얻은 것 같지만, 배우러 올 때 보다 사진이 늘었냐고 묻는다면 역시 글쎄다. 스티븐 킹이 말하는 직관은 사진에서도 통하는데 달리 말하면 보는 눈이다. 할 말은 많지만... 사진은 우선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20대의 천재 사진작가가 50대의 초보 사진작가가 되려면 30년이 걸립니다.
-피운-



인생론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 309p



그리고 한걸음 더

닫힌 문과 열린 문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초고와 교정본을 함께 보여준다. 닫힌 문에서 작성한 초안을 물을 열어 두고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다듬는지를 보여준다. 나도 앞으로 부사를 보면 가만 놔지 못할 것 같다.



번역가 김진준


역자에 대한 이야기는 꼭 남기고 싶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통해 김진준 작가를 알게 되었다. 감탄하면서 글을 읽었다. 억지로 한글로 옮겨놓은 글이 아니다. 스티븐 킹이 한국어에 능통한 줄 알았다. 사투리까지 잘도 한다. 번역된 책에서도 스티븐 킹의 글의 속도감은 그대로다. 책의 마지막 역자 후기는 꼭 보자. 두 페이지도 안 되는 지면에 이 책의 전체를 너무도 잘 요약해 두었고, 스티븐 킹이 말하는 간결한 글이 여기 있다.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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