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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Sep 03. 2023

[책] 흰

한강

흰/ 한강


한강의 작품을 읽을 땐 그녀인지 소설인지 섞이면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글입니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다가옵니다. 이것이 허구라는 단서는 책의 표지에 있습니다. 한! 강! 소! 설! 소설 같지 않은 산문집의 무늬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은 소설입니다. 그 허구 속에서 한강의 진짜 모습의 힌트가 있겠죠. 

주인공의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죽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며 주인공은 성장했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언니의 빈자리를 채우며 자라난 주인공과는 다릅니다. 항상 그 빈자리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와는 상관없이 더 깊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엔 어떤 책을 읽어도 늘 사진과 연결 짓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사진 냄새가 나는 책은 당장 읽지는 못하더라도 읽을 책 목록에라도 올려놓게 됩니다. 한강과의 만남은  [채식주의자] 다음으로 두 번째입니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도 사진 때문입니다. 흰색을 떠올리면 나에겐 화이트밸런스(White Balance)가 생각나고 하얀색의 배경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제대로 흰색을 본다는 것은 사실 그것이 흰색이라는 것에 대한 학습된 인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정확히 흰색을 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하기 전과 사진을 한 후에 받아들이는 색이 조금 다릅니다. 절대적인 흰색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상대적인 흰색으로 다가오면서 주변의 빛에 더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셨나요? 흰색에 대해서? 한강의 [흰]을 읽으면서 사진 하는 사람으로서 느껴지는 흰색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진 현상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밝고 어둠을 조절하는 노출 항목에서 화이트(white)를 조절하는 메뉴바가 있습니다. 정말 흰색으로 만들면 사진 속의 그 부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흰색이 됩니다. 사실 빛을 흰색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무색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군대 훈련소 때 이런 흰색을 눈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흰색으로 문을 칠하듯 나 또한 흰색 문을, 정확히 말하면 무색의 문을 보았습니다.





화생방 훈련을 처음 겪었을 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방독면을 벗으면 그냥 조금 매캐한 공기가 코를 조금 심하게 자극하는 정도일 줄 알았습니다.  조금 눈물 흘리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방독면을 벗는 순간 매캐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숨을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날숨만을 하고 들숨으로 생존을 위한 호흡을 시도하면 급격히 '턱'하고 막히는 느낌과 함께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큰 심호흡으로 방독면 안에서 산소를 가능한 대량으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어야 하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모르고 그냥 벗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냥 참아야겠다는 생각에 숨을 멈추었더니, 내 몸에 이렇게 많은 숨구멍이 있는 줄은 그때 알았습니다. 몸 전체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이놈의 독가스는 계속 들어와 내 안의 액체란 액체는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을 수밖 에없었고, 더 이상은 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살려 달라고 조교에게 손짓을 하는 그 순간에 조교가 아주 매우 느린 속도로 뭐라고 말하는데 그냥 웅~응하는 소리였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그 순간에 오른쪽에서 빛이 보였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순도 100%의 하얀색 천국의 문을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301호의 문을 겹겹이 흰색으로 덧칠했습니다. 나에게 흰색문은 화생방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엔 중간중간 사진이 나옵니다. 글과 섞어보기 힘들어 사진은 애써 넘겨버렸습니다. 글을 통해 내가 그린 공유할 수 없는 그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사진은 책을 다 읽고서 감상했습니다. 






'흰 '이란 키워드를 따라 글을 읽고 난 후 나에게 끝까지 남아있는 키워드는 #흰개 였습니다. [채식주의자]도 떠올랐습니다. 개는 개인데 짖지 않는 개는?이라고 소설 속에 수수께끼 질문이 나옵니다. 소설 속의 정답은 안개입니다. 윤기 없는 흰 털의 개, 듬성 듬성 스트레스성 탈모를 가진 흰 개를 안개를 보면 떠올리게 되었나 봅니다. 공포에 뒷걸음치며 물러나는 개의 모습도 안개 같기도 합니다. 안개도 우리가 다가가면 뒷걸음치며 흩어지듯이 말이죠. 

쇠사슬에 묶여있는 개는 도사견이 아니더라도 어떤 개라도 사람을 물 수 있습니다.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늘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사람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나에게 복종하게 하고, 먹이를 준다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아무리 산책을 자주 한다고 해도 갇혀있는 삶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나만을 바라보는 강아지에게 미안한 맘이 큽니다. 쇠사슬에 묶여있는 강아지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낯선 이를 향해서 짖어댈 수도 있습니다.  때론 두려운 눈빛으로  짖을 수도 있고, 아무런 소리 없이 뒷걸음질만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묶어있는 개는 어떠한 모습이라도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집을 지키기 위해서 짖어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를 위한 갈구일 뿐입니다.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선,  집을 지키는  충직한 강아지가 되도록 외롭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함께 살을 비비고, 정을 나누지 않으면 개도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쇠사슬에 묶어두고 낯선 사람을 보면 짖지 않는다고 동물 학대를 하면서, 내가 밥을 주니 내가 주인이고 너는 충직한 강아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면, 절대 풀리지 않는 단단한 쇠사슬과 제때 밥 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목줄이 풀리는 순간 주인이라고 자부하는 당신을 물 수도 있습니다.






[흰] : 균형입니다.


사진을 하면서 늘 접하는 흰색 때문에 한강의 [흰]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진에서의 화이트밸런스(White Balance)가 흰색 균형이듯이 균형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어떤 편중된 것을 싫어합니다.


다만, 음식에 감사했으면 합니다. 자연 속에서 살았으면 합니다. 


 생선을 맛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재미로 낚시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흰 : 균형]입니다.


채소도 맛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장식을 위해 꽃을 꺽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흰 : 균형]이고 자연 속에 우리가 동물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모든 빛을 섞으면 [흰] 이 됩니다.

이것이 균형입니다.



민속촌


민속촌

야외 수업이 있어서 민속촌을 다녀왔어요. [흰]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찍었습니다.

주인공 언니가 입었을 배내옷을 발견했어요. 가운데 두 개의 천은 강보인가 봅니다.

소설속의 <강보>, <배내옷>을 다시한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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