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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May 20. 2024

“그램입니다.”

LG gram |  그램

브랜드 이름은 모든 기억의 시작이다. 브랜드가 만드는 행위들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 기억 속에 쌓인다. 나쁘고 좋은 기억들이 브랜드 이름에 켜켜이 쌓인다. 이름만 보아도 사람들은 특정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름이 브랜드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인 셈이다.

엘지 LG의 노트북 브랜드 ‘그램 gram’이란 이름은 가볍지만 강렬하다. ‘그램’이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혁신 그 자체다. 그들은 가벼움이라는 목표에 이르기 위해, 결의를 가죽띠에 새기고 머리에 질끈 동여맨 장수처럼 ‘그램’을 향해 돌진했다.


“그램입니다.”

LG gram56


노트북이 가진 휴대성의 의미

연필의 발명은 기록 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휴대가 간편한 연필은 기록의 혁신을 가져온 인류의 선물이었다. 엄청난 크기로 도서관에서만 보관하던 책도 휴대할 수 있는 모양과 무게로 만들어졌다. 휴대성은 문화의 발전과 진화를 선사했다. 모바일 mobile이 가진 ‘움직일 수 있는’ 이란 의미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없앤 중요한 요소이다.

엄청난 크기의 컴퓨터가 주를 이루던 1971년. 컴퓨터도 휴대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2년 팰로앨토 연구소의 앨런케이 Alan Curtis Kay는 컴퓨터가 ‘대학 노트만 한 크기에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추고 계산작업, 영상, 음향도 즐길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기’가 될 것이라 발표했다. 36년 후인 2008년 1월, 애플은 노트북 하나를 발표한다. 무대에 등장한 스티브 잡스는 서류봉투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노트 크기만 한 은색의 물체를 꺼내어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 서류봉투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57다. 공기처럼 가볍다는 의미의 이름은 ‘맥북 에어’. 다소 충격적인 그 장면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갔다. 맥북에어 2008년 모델의 무게는 1.36kg으로, 두께도 매우 얇아 휴대용 노트북의 핵심을 갖추고 있었다. 2010년에 나온 맥북에어는 11인치가 1.08kg의 무게, 13인치는 1.34kg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백라이트로 빛나는 애플로고를 보이며 카페에 앉아 일하고 커피를 마시는 풍경은 하나의 문화처럼 되어갔다. 모두가 맥북에어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생각했다. 맥북에어의 등장으로 컴퓨터 업계는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고 각 브랜드들은 어떻게 하면 맥북에어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앞다투어 연구하기 시작한다. 무게나 크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름에 담은 무게

엘지도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당시 PC 개발팀은 연구실에 전자저울을 가장 먼저 구비했다. 작은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저울을 구비한 까닭은 수 만 번 노트북 무게 테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다. 노트북 한 대를 위해 수천 번의 회로 기판 설계와 실험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회로 기판의 무게까지 불필요하다 느껴져, 기판의 모양 자체를 직사각형이 아닌 비정형의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회로와 회로선 역시 무게를 덜기 위해 한쪽 면에 몰아 배치하고 남은 부분은 구멍을 뚫어 제품 무게를 가볍게 도왔다. 스티커의 무게도 버거웠는지 스티커를 없애고 대신 레이저 각인으로 정보를 넣었다. 설계와 조립, 해체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 엘지의 노트북은 모습을 갖춰갔다.

2013년 LG 전자에서 순백의 얇은 노트북 '그램'이 출시된다. 그램은 노트북에서 사용하는 수백 개의 부품 무게를 단 1그램이라도 덜어내는 데 성공하여 980그램이란 목표에 도달했다. 노트북 이름은 라틴어에서 ‘적은 무게’를 의미하는 gramma에서 파생된 'gram’을 택했다.

gram이란 측량 단위는 1799년 프랑스에서 미터법의 단위로 처음 쓰인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인이 사용한다. 그램과 가볍다는 이미지의 연결 고리는 우리 머릿속에 이미 잠재하고 있었다. 노트북 커버에 새겨진 ‘gram’을 본 이들은 왜 노트북 명칭이 ‘gram’일까 궁금해한다. 궁금증을 가지고 노트북을 바라보다 이 이름이 kilo gram을 넘지 않아 gram 단위의 노트북이라면 ‘아하!’ 하며 브랜드명에 대한 첫인상을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의 인식에서 ‘gram’이란 브랜드 이름에 이야기 하나가 더해지고 각인된다. 첫 번째 출시된 그램 노트북은 1kg가 넘었지만, 혁신을 담아낸 소망처럼 2014년 LG는 마의 1킬로그램의 경계를 허물고 그램 단위의 노트북을 개발했다. 1kg 미만 무게는 브랜드명의 가치를 한층 더 빛냈다. 이름에 담길 무게를 느낀 개발자들은 kg의 벽을 넘기 위해 설계와 조립을 무한반복으로 했다. 이후로 출시된 그램은 1kg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이 세워졌다.

사람과 교감하는 노트북

2017년 LG 가 내놓은 그램은 ‘ALLday’, 하루 종일 사용 가능한 노트북이란 모토 아래 24시간 사용하는 배터리 성능으로 휴대성을 높였다. 그리고 2018년 ‘ALL new gram’은 전원버튼에 지문인식 센서를 두어 ‘나’를 기억하고 ‘나만이 열 수 있는 그램’이 됐다. LG 그램 14는 화면이 커져도 무게는 그대로 유지했고 LG 그램 17은 배터리 사용시간이 향상되어 ‘ALLday’ 란 수식어가 붙었음에도 무게에 변화는 없었다. 그램은 휴대와 충분히 긴 사용에 초점을 맞춰 무게와 핵심적인 기능을 개선하며 발전해 간다. 소재마저도 알루미늄 무게의 3분의 2 수준인 마그네슘을 채택하고 인치수가 늘어갈수록 카본 마그네슘, 리튬 마그네슘 등 신소재를 발굴하며 모든 것을 무게를 위해 혁신하며 바꾸어 나갔다

하지만 2018년 ‘ALL new gram’은 결국 1kg을 넘어버리고 만다. ‘gram’을 넘어선 1.1kg이란 무게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든다. 그램의 모든 노트북이 ‘gram’ 단위를 지키면 이름에서 느끼는 중량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을 텐데. 차이가 얼마 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킬로그램이지 그램은 아닌 것만 같다. LG라는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gram’이란 브랜드명을 디스플레이 패널 뒷면에 사용하면서 지켜온 자부심이었기에 더 안타깝다.


이름을 지켜나간다는 것의 어려움

브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하나의 결과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이 가져다 줄 가치를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 후면 즉 커버 쪽에 새겨진 ‘gram’은 사용하는 사람이 볼 때 거꾸로 새겨져 있다. 커버의 ‘gram’은 결국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방식이다. 그 시선이 닿은 이름에 의미를 지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5년 동안 꾸준히 지켜온 이름과 이름에 담겨있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못

내 아쉽다.

공자 말씀의 정명순행正名順行에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되도록 만드는 정명은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은 이름을 가진 사물의 명분과 실질이 같도록 만든다는 큰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 아닐까?



브랜드가 가진 이름은
모든 기억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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