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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Aug 02. 2017

'기억'의 시작

브랜드명 | Brand Name

“브랜드가 뭐죠?” 

가끔 듣는 질문입니다.

1997년 IMF 이후에 ‘브랜드’라는 말이 급물살을 타고 한국인들 삶 전반으로 파고듭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마케팅과 브랜딩을 비교해서 설명하곤 합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다릅니다.”

“마케팅은 마케팅 전문가가 전략을 수립하고 시작하면 실행하지만

브랜딩은 브랜드가 간판을 달면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마케팅은 수익에 무게를 두지만

브랜딩은 무형자산가치의 제고에 무게를 둡니다.”

이런 설명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의자를 당겨 앉고 집중하며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간판 달면 시작되고, 시작되는 브랜드에 쌓여야 하는 것이 무형자산가치(사랑, 신뢰, 존경 등)이다 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존재의 시작이고 기표(記表)이며 
무형자산가치를 담아둘 그릇이기 때문이죠.


이름은 그 어원이 ’일ㅎ다’에서 파생된 ‘일흠’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 의미가 ‘부르다’ 이니 이름은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이름을 부르면 그 둘 사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 ‘꽃’ 중에서



어린왕자와 꽃


브랜드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면 그 이름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불러 준 사람에게 의미가 되어 기억 일부가 되기 시작합니다.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쌓인 기억들은 쉽게 고치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이름과 더불어 본질이 혹은 정체성이 쌓여갑니다. 그것이 긍정의 가치든 부정의 가치든 그 브랜드의 무형 자산이 되어갑니다. 

이름에 관해 남다른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사물은 우리가 이름을 붙여 주고 그것을 인정해 줄 때만 존재한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만의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는 의식이고 사물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고
알아줄 때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며, 따라서 우리의 관심을 받고 사랑의 의무를 일깨워 준다.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1949,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자신이 디자인 한 파리채(Dr.Skud)에 노섬브리아(Northumbrian | 고대 영어 4가지 방언 중 북부 지방에서 사용된 방언) 단어로 ‘때리다’를 의미하는 Skud와 박사를 의미하는 Dr. 를 붙여 천연덕스럽게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단어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때리는 데 박사 구만!’이라 할 만합니다. 필립 스탁은 Dr.Skud에 자신의 친구 얼굴을 새겨 넣었습니다. 아마도 사용하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문에 기대어 닫히지 않도록 하는 dede는 숲에서 사람을 지키는 정령의 이름을 갖고 있어 그런지 왠지 문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습니다. 

친구, 수호천사 등 필립 스탁은 사물에 사용하는 ‘나’의 ‘누구’의 형상과 이름을 이용해 관계를 맺어주려는 의도를 갖습니다. 구석에 놓여 먼지가 쌓여가는 ‘무엇’이 아니라 내 시야에 놓고 먼지를 털어주어야 하는 ‘누구’ 가 되도록 말입니다. 아마도 털어주고 닦아주며 매만질수록 사람과 브랜드 사이엔 ‘애정’이 싹트게 될 겁니다.


(좌) Dr.Skud (우) dede


살펴봤듯이 ‘기억’ 속에 브랜드의 이름은 본질과 정체성뿐만 아니라 친근함, 애정 등의 연결고리이며 그 이름 안에 긍정적, 부정적인 여러 가지 무형의 감정들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이름에 연결된 혹은 담긴 이 무형의 것들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브랜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 사랑, 존경을 만드는 재료임과 동시에 불신, 미움, 경멸을 만드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이름에 담기는 가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역 뉴스 공동 캐스터를 거쳐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지고 있는 아침 토크쇼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 진행자로 발탁되어 특유의 카리스마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한 달 만에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잘 나가던 그녀는 이후 시련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의 가족 중 한 명이 타블로이드지(Tabloid)를 통해 그녀의 숨겨왔던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오프라는 더는 감추지 않고 자신의 토크쇼에서 대중들에게 모든 것을 밝힙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친구나 친척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미혼모가 된 사연, 2주 만에 아이를 하늘로 보내며 충격을 받아 가출과 마약을 일삼았던 과거들… 그 모든 어둠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겁니다. 

사회적 맹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는 이 사건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사람들은 비난보다 지지로 답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그녀는 이 사건으로 많은 치유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오프라는 토크쇼 무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초대받은 이들은 오프라와 같이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며 치유되고,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도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대단한 현상들은 오프라피케이션(Oprahfication : 집단 치료의 하나로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며 치유되는 현상)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에게 ‘Oprah’라는 이름을 ‘truth’와 동일시된다고 합니다. 오프라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며 모든 행동도 ‘진실’입니다. 그래서 오프라가 추천하는 모든 것도 ‘진실’ 한 것들이 됩니다. 오프라가 추천하는 책엔 ‘OPRAH’S Book Club 마크가 인증처럼 인쇄되고 날개 돋친 듯 팔려가게 됩니다. 이것이 이름에 담긴 ‘무형자산가치’의 힘입니다. 

책 만권을 소유하고 판매하는 사람은 최대 만권을 판매하면 그뿐이지만 ‘OPRAH’란 이름은 책의 권수도 제한이 없고 대상도 제한이 없습니다. 


유형자산가치는 유한하지만 
무형자산가치는 무한합니다


오프라 북클럽 로고와 오프라 북클럽 추천 서적


무한한 무형자산가치를 담는 것도 이름의 몫이며 이를 알리는 것도 이름의 몫입니다. 이름은 그런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들으면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이름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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