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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16. 2020

부모에게 욕하는 아들을 보며

헝클어진 실타래, 꼬이는 시점은 어디일까


 소란스러웠다. 늦은 퇴근길, 아파트 단지 가운데 위치한 정자에서 두 남자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어두워진 후라 정확한 외형은 식별되지 않고, 날카로운 목소리만 아파트 외벽 콘크리트 사이를 오가며 울렸다. 


 보통 군 관사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일은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군인이거나 군 가족뿐이기에, 서로 배려하며 살았다. 좋게 말해 배려이고, 눈치를 보며 산다. 눈치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비도덕적 행동을 삼가는 정도다.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지 않고, 주정차 위반 덜하고, 차량 경적 덜 울리고, 소란 피우지 않는 정도. 


 그런데 늦은 밤에 관사 한가운데 있는 정자에서 들려오는 고성에 무슨일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다른 아파트 사람이 여기 와서 싸우나? 군 자녀들끼리 싸우는 건가?’ 마침 어둡기도 했고 나무에 가려 싸우는 이들에겐 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걸으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 명이 소리를 지르고, 한 명은 타이르는 중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꽤나 가까운 사람 간의 대화다.


 ‘니가, 씨X, 쓰레기’와 같은 말들이 오갔다. 동기들끼리 싸우는 건가? 성인 두 남자가 서로 반말을 하고 있고 꽤 가까운 관계인 것으로 미뤄 대등한 관계의 다툼으로 추측되었다. ‘동기끼리 무슨 원수를 졌길래 아파트 한복판에서 저럴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어지는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빠 니가 씨x, 또 그런 거잖아

 응? 아빠? 귀를 의심했다. 저게 아들과 아빠의 대화라니. 흥분해서 욕을 퍼붓는 이는 아들이었고, 화를 억누르며 타이르는 사람은 아빠였던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생쯤 되나 보다. 성인 몸집이라 아빠와 아들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부모의 권위와 존중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아들이 아빠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단 말인가. 관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더 남일 같지 않았다.


 ‘어쩌다 저 상황이 되었을까’ 처음부터 저렇진 않았을 것이다. 저 아들도 내 아이들과 같은 서너 살 시절이 있었을 텐데.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깔깔거렸을 텐데. 언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어떤 조짐과 시작, 심화의 과정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된 것인지 안타까웠다.


 ‘저 아빠의 심정은 어떨까’ 자신에게 쌍욕을 퍼붓는 아들을 앞에 둔 아빠의 가슴과 내면을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내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기에,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음이 아빠의 어조에서 배어 나왔다. 가족 사이에 깊게 새겨진 골과 그로 인한 고통이 애처로웠다. 


 만약 아들이 나중에 커서 나에게 저런다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절망감이 몰려왔다. 열심히 하루를 살고, 애정을 담아 자녀와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나에게 소리 지르고 욕하는 아들을 본다면 내가 참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강하게 나간다면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러웠다. 케빈(둘째의 별칭)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날 반기며 안아줄 텐데 별생각을 다하고 있다.


 며칠 전 소리 없이 사라진 가족들을 다룬 ‘증발한 사람들’이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부분 노숙하거나 일용직을 전전하며 홀로 살아갔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 단절로 현실을 회피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 20대인 자녀가 부모의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부끄러움에 어둠 속으로 증발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기사를 보고 아이들에게 부담감을 주거나 마음에 짐을 안겨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파트 정자의 싸움이 떠올랐다. 그 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관계를 회복했을까 여전히 그대로일까, 어쩌면 더 심해졌을까.


 아이가 커가면서 사춘기 자녀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선배들의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교의 자녀들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학교를 자주 옮겨 다녀 적응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 부모와 자녀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엔 아빠의 근무지에 따라 가족이 같이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 다닌 군 자녀들도 꽤 있을 정도로. 요즘은 자녀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 같이 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 또한 학교를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은 최소화하려고 생각 중이다.


 전학으로 인한 부적응을 최소화한다면, 자녀들과 부모의 관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과한 기대감과 그로 인한 실망감일 테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만족감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고 신이 난다. 잘하지 못하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또래 아이들보다 잘하거나 빠르면 뿌듯하고, 뒤처지면 조바심도 생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각종 학원과 조기교육이 성행하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커가며 나도 모르게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교육에 관한 심적 동요가 심화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아이들 각자의 인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괜한 기대에 실망을 얹어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헝클어져 풀 수 없는 실타래가 되지 않도록, 실 한 올 한 올을 차분하게 정돈해 나가야겠다. 특히 가까운 관계에선 더 단단하게 엉킬 수 있기에 더 조심스럽게, 더 차분하게 공을 들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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