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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27. 2020

보험회사에서 소송을 걸어왔다.(2_완결)

셀프소송 경험기

* 1편 보러가기 : 보험회사에서 소송을 걸어왔다.(1) (brunch.co.kr)


골리앗이 싸움을 걸어왔다


 법원으로부터 등기가 도착했다.


 잠깐 법원 등기에 대한 팁을 드리자면, 일반 등기와 달리 본인 또는 집에 있는 가족만이 대신 수령할 수 있다. 내밀한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는 좋은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경우 등기 수령이 곤란하다. 집에 있을 수도 없고, 회사 앞으로 오시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수령하지 않았다가는 법원에서 공시송달(게시판 등에 게시해놓고 전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송달)로 처리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에 반드시 수령해야 한다. 이럴 때 우체국 당직실에 보관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퇴근길에 신분증을 가지고 우체국 당직실에 들러 수령하면 업무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등기를 수령할 수 있다. 나도 이번에 깨달은 방법이다. 굳이 몰랐어도 될 것을..


 법원에서 온 등기를 확인해보니 상대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위임받은 법무법인에서 보낸 것이었고, 내용은 상대 보험사에서 나에게 130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청구 내용을 정리하면,


1. 상대 보험사는 상대에게 무보험차 사고 보험금으로 총 610여만원을 지급했다.


2. 상대 보험사는 아버님 보험사로부터 책임보험 한도금액인 480만원(1인당 160만원 *3명)을 받았다.


3. 상대 보험사는 상대에게 지급한 610여만원에서 아버님 보험사로부터 받은 480만원을 제외한 130여만원을 나에게 청구하는 구상금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보험사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에 연락해보니, 구상금을 즉시 지급하면 소송비용이나 이자는 받지 않는 아량을 베풀어 주겠지만, 즉시 납부하지 않고 소송이 진행된다면 아량은커녕 자신들이 승소 시 나에게 소송비용까지 청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소송을 하셔도 되지만 자신들이 승소할 것이기에 잘 생각해보라는 조언도 친절하게 덧붙여 준다.


 뒷골이 당겼지만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내용을 파악해 봤다. 그들은 왜 나한테 50만원을 받고도 보험회사로부터 610여만원이나 더 받아 간 것인가?


나쁜 행태와 관행


 법무법인에 보험금 지급 내역을 요구해 확인해 보았다. 상대는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한의원을 갔다. 셋 다 뇌진탕 의증 진단을 받고 무슨 진료와 무슨 약을 받은 것인지 한 명당 30만원에 근접하는 진료비가 나왔다. 말로만 듣던 기승전 한의원 환자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 가족, 과속방지턱 잘못 넘었다간 반신불수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무보험 사고 보상을 진행하던 자신들의 보험사로부터 1인당 150만원의 합의금을 받았다.


 내용을 파악하니 가라앉혔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사기에 가깝다. 차는 수리도 하지 않았는데, 셋 다 뇌진탕이고, 합의금은 아이까지 포함해 개인당 150만원씩 받아 가다니. 상대 보험사는 그걸 다 줘놓고 나에게 그 돈을 다 내라고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나쁜 행태였다. 전형적인 상대의 곤궁함을 이용한 과도한 이득 챙기기였다. 괘씸해서 그냥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과, 소송을 진행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승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그냥 130만원 주고 잊어버리자는 생각이 교차한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검색을 해봐도 소송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나쁜 놈들과 나쁜 보험사였다. 나쁜 놈들은 과다한 금액을 청구했고, 나쁜 보험사는 어차피 나에게 청구하면 되니 금액을 과다하게 지급해 준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 말도 없이 과다한 합의금을 지급해놓고, 이제 와서 나에게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어오다니. 그냥 물러서기엔 괘씸했고, 나쁜 행태를 일삼는 상대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그 판단에는 전자소송 제도가 힘이 되었다. 전자소송 덕분에 변호사 없이 홀로 하는 셀프소송이 가능하다. 법원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고, 소송관련 내용은 전자문서로 제출하면 되기에 큰 부담이 없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변호사 비용이 소송비용보다 더 커질 판이었다. 그래서 나의 경우와 같이 소액소송을 당하면, 대응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상대는 그 심리를 이용해왔을 테다. 전자소송이 없었다면 나 또한 변호사 선임비용과 직장 생활 중 시간을 내 법원에 자주 들러야 한다는 부담에 대응을 포기했을 것이다.


 상대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글을 정성껏 작성해 답변서를 제출했다. 나의 논조는 이러하다.


1. 사고 자체가 경미했다. 차에서 내려 상호 차량과 신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연락처를 건네준 후 이탈하였다.


2. 상대는 차량을 수리하지도 않았다. 볼트 자국 찍힌 정도로, 현금을 받고 수리하지도 않고 지금도 타고 다닐 것이다. 사고의 경미성을 뒷받침해 준다.


3. 상대 세명은 사고 1주일 후 주말을 이용해 한의원에 들렀다. 세명 모두 뇌진탕 의증 진단을 받았다. 뇌는 신체에 가장 중요한 부위다. 사고 후 일상생활을 하다, 1주일이 지난 주말을 기해 세명이 소풍가듯 한의원에 간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 머리가 아프면 1주일 간이나 기다리지 않았을 테고, 한의원에서 처음 ‘뇌진탕’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후 현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았다. 아이가 뇌진탕이 의심된다는데 한약만 먹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4. 과다한 합의금이 지급되었다. 손해보험협회에서 발행한 ‘자동차보험표준약관’에 뇌진탕은 상해 11등급으로 기준 위자료는 20만원인데, 세명 모두에게 150만원의 과다한 합의금이 지급되었다.


5. 보험사에서는 나에게 구상 청구할 것을 염두 해 과다한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에 초등학생에게도 성인과 같은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6. 상대 보험사는 소송에 익숙지 않은 개인을 상대로 편히 이득을 취하려는 ‘소송 갑질’을 하고 있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


 답변서를 준비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시간을 들여 쓰다 보니 그냥 130만원 주고 말자는 충동도 일었지만, 이렇게 물러선다면 계속해서 소송 갑질을 이어나갈 테고,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사의 갑질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1분을 위한 준비


 골리앗과의 대면 일정이 잡혔다.


 변론기일이 잡히고 출석하라는 통지가 왔다. 여기서부터 또 어려움이 커진다. 시골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가야 한다. 하루 휴가를 내야 하고, 교통비도 만만찮다.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지만 법은 비교적 정의의 편이라는 믿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법정은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법정 뒷좌석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소액민사소송이라 5분에 3~5건의 사건이 진행되었다. 민사소송 법정의 모습은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형사법정과 조금 다르다. 피고와 원고가 판사의 좌우측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는 구도가 아니라, 판사의 전면에 피고와 원고가 나란히 앉아 판사와 마주 보도록 되어있었다. 피고와 원고의 좌석 뒤쪽으로 많은 소송관계인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판사가 부르는 사건번호를 듣고 피고와 원고 좌석에 앉았다.


 피고와 원고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판사는 이미 사건기록을 다 검토하고 왔으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있는지를 묻고 변론은 종결되었다. 대부분의 사건이 1분을 넘지 않았다.


 출석한 사람들 중 개인의 자격으로 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소액민사소송 특성상 교통사고와 관련된 사건이 많았고, 대부분 보험회사 측 직원이거나 보험회사에서 소송을 맡긴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출석했다. 보험회사 직원이나 법무법인 변호사는 피고와 원고석을 번갈아가며 앉았고, 한번 앉으면 서너 개 사건의 피고 또는 원고 역할을 연달아하기도 했다. 다들 익숙하게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사건이 진행되었고, 나는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분위기를 관찰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이 지연되어 내 사건번호가 불렸다. 피고 자리에 앉으며 원고 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변호사를 처음 보게 되었다. 자리로 나가며 째려봤더니 눈을 피한다.


 판사는 사건기록을 다 보았다고 이야기하며, 나에게 직접 출석한 것이냐고 물어 맞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원고인 보험사 측에 더 제출할 것이 없냐고 물었다. 원고는 없다고 답변했고, 1달 정도 후의 날짜를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나에게 판결문은 전자소송으로 확인 가능하다며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여준다. 와우 다시 안 와도 된다.


 그 1분을 위해 5시간을 달려왔다. 그 1분을 위해 며칠이 걸려 답변서를 작성했다. 그 1분이 지나고 다시 5시간을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며 생각해보았다. 내 사건 이전에 진행된 사건들을 지켜봤을 때, 판사는 불리한 쪽에게 마지막으로 더 할 것이 없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나의 심증이 이쪽인데 뒤집을 자료가 있는지' 묻는듯했다.


 내 사건에서 판사는 상대 보험사에게 더 할 것이 없냐고 물었다. 상황의 전개가 나쁘지는 않다는 위안감을 안고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1달은 또 훌쩍 지나갔고, 문자로 ‘전자소송 판결문 도착’ 안내가 왔다. 두근두근.


 열어보기 전에 생각했다. 일부만 승소하더라도, 만족하기로 했다. 나쁜 행태에 경종은 울렸을 테니.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기록을 남겨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원의 판단



 결과는 완전 승소였다. 소송비용까지 상대가 부담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소름이 돋았고 희열이 느껴졌다. 노력해 일궈낸 결과에 대한 기쁨이었고,  부당한 힘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은 자긍심이었다.


 상대 보험사와 법무법인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논리가 빈약하고, 소송이 진행된다면 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하는지. 그걸 알고 있는 자들이 개인에게 압박감을 불어넣어 지레 포기토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소송이 어려운 상대를 조롱하고 기만하는 것이다. 숫자를 모르는 이에게 복잡한 수식을 기재해 비용을 더 뜯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도덕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구상금 청구 소장을 들고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나의 기록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더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고 되어있다. 소송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변호사 수임료다. 나는 셀프소송으로 진행했기에 변호사 비용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사가 없었기에 직접 법원에 출석하기 위한 교통비가 들었고, 휴가를 사용해 기회비용이 소모되었다. 소송비용까지 다 받아야겠다. 나쁜 놈들에게 마지막 하나까지 청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방법을 찾아보니, 법원에 소송비용확정신청을 접수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지난주 소송비용확정신청을 접수했다. 이 또한 전자소송을 이용해 셀프로 진행했다. 나는 변호사 비용이 들지 않았기에 수임료는 제외하고, 실제 소요된 비용을 기재했다. 법원에서 어디까지 인정해 줄지는 모른다.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려 한다. 후에 결과가 나온다면 후일담을 남길 예정이다.


글을 맺으며


 소송 결과가 확정된 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야 이런 일이 처음이지만 보험회사는 하루에도 수십 건이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없고, 소송이 진행된다면 패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법무법인도 마찬가지다. 그 점을 알고 있음에도 소송을 걸어온다. 개인들이 지레 겁먹고 납부하길 기대하면서.


 이런 행태는 상대를 기만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보이스피싱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잘 모르고, 대응이 어렵고, 번거로운 것이 싫고, 소송까지 걸어올 정도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게 생각하도록 덫을 놓고 빠지기를 기다린다. 합법적 피싱이다.




 이런 나쁜 행태가 없어지길 바란다.


 보험회사가 사회적 의무를 지고 있는 기업가 정신을, 법무법인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법률가 정신을 하루빨리 되찾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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