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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8. 2020

여보, 우리 같이 살까?

ep. 16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홀로 벽을 등지고 애처롭게 나풀거리는 12월, 매년 이맘때는 인사이동 시즌이다. 한해의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보직으로 이동할 사람과 남을 사람들이 결정된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대로 남는 사람은 남는 대로 마음 복잡하긴 매한가지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근무했던 부대를 떠남에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예년 같으면 삼삼오오 모여 못다 한 정을 나누겠지만, 코로나로 자가 대기 지시가 시달된 지금은 모두 조용하게 업무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왁자지껄하고 약간은 소란스러운, 반쯤 공중에 뜬 연말 인사이동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조용히 인사 나누며 떠나는 사람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가고, 새로운 사람은 또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스며든다.


 연말 분위기로는 익숙지 않은 모습이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꼭 술잔을 기울이거나 큰 행사를 해야 정이 가고 마음이 전해지는 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간다. 소소한 정을 나누고, 행운을 빌어주는 덕담과 인사로도 충분히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내년에 시골에서 1년 더 지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년엔 시골에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하와이, 괌, 제주도 1년 살기가 아니라 조선의 정취와 멋들어진 풍광이 서려있는 시골 1년 살기를 그려본다.


 내년에 교육이나 파견을 갈 수도 있다. 몇 달씩 집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한동안 주말에만 집에 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염려해 따로 지낸다면 앞으로 같이 살 길은 요원하다. 교육과 파견이라는 변수는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에, 함께 사는 기간만이라도 많은 추억을 쌓고 기억을 남기려 한다. 한글과 숫자를 익히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몸으로 놀아주는 유년의 추억을.


 첫째와 어린이집 빌보드 차트에 등재된 ‘사랑을 했다’, ‘100명의 위인들’ 같은 노래를 같이 부르며 가사를 익혔다.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걸어가던 그 길이 기억 속과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노래들이 의외로 한 구절 정도만 익숙하지, 시작과 끝에 생각지 못한 낯선 가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간다. 둘째 셋째는 또 어떤 노래를 궁금해할까?  


 아빠 놀이동산도 다시 개장할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들을 어깨에 앉히고 무릎을 굽혔다 펴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인간 회전목마를 태워주다가, 마지막엔 청룡열차로 변신해 어깨 위에서 바닥으로 자유 낙하시켜줄 때 들리는 까르르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다.


 세 아이를 한 번에 안아 올릴 수 있는 날도 많이 남지 않은 듯하다. 첫째를 오른팔로, 둘째를 왼팔로 안고 가운데 맞잡은 손에 막내를 올려 네 명의 몸무게를 한꺼번에 재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힘닿는데 까지 시도해보려 한다. 지금 130kg대가 나오니 일단 150kg 까지를 목표로.      


 브런치에 써 내려간 ‘사이좋은 별거부부’는 동거를 위한 밑밥이었을까?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풀어놓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 저편의 추억들이 눈앞에 글로 나타났다. 옛 생각에 빠져 즐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코로나로 가족을 못 보는 기간이 길어져 더 애틋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같이 살아보려 한다. 같이 지내면 불편과 충돌이 필연적이다. 부부사이, 부자사이, 모자사이, 부녀사이, 모녀사이,  남매사이, 자매사이, 다섯 명으로 만들 수 있는 관계도 복잡다단하다. 브런치에 ‘갈등관리’를 그렇게 써놨는데, 막상 내가 잘 관리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보단 좀 더 발전했으리란 기대도 해본다.  


 동거하며 브런치에 어떤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아니 기록을 남길 시간은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생각지 못한 상황이나 대화로 웃을 일이 많다. 엉뚱한 대답이나 기발한 상상, 아이들만 할 수 있는 생각들이 큰 웃음을 준다. 정말 재미있는데, 그 재미를 이야기로 잘 풀어낼 수 있으려나.      


 일단 같이 살면서 부딪혀 보려 한다. 2년의 시간을 건너 동거하려니 묘한 긴장감과 설렘도 있다. 곧 닥쳐올 현실이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몇 달 후 브런치에 '간헐적 별거의 필요성'을 쓸지도 모르겠다.      


 아 맞다. 아랫집에 인사부터 드려야겠다. 윗집에 사람이 사는 건지 안 사는 건지 궁금했을 텐데,  빵 좀 사들고 ‘세 친구’가 온다는 양해를 미리 구해야겠다. 아랫집 현관 앞 복도에 유모차가 한 세 개, 씽씽카가 한 다섯 개 정도 있으면 좋겠다.      




 사이좋은 별거부부가 마무리된다. 사이나쁜 동거부부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차분히 가족들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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