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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6. 2020

소령들의 속사정

ep. 15


 코로나의 확산세가 소강상태이던 11월 초, 오랜만에 동기들과 저녁을 먹었다. 자리에 모인 네명 중 세명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는데, 연말 인사이동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별거 가족생활이 화두에 올랐다.


 서로의 사정과 애환을 이야기하다 보니, 동기 A, B, C 모두 속사정이 깊었다. 다들 절절한 드라마 한편씩 찍고 있다. 2020년 해군 소령들의 애환을 들어보자.


 A는 아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결혼 시작부터 별거부부였다. 아내의 육아휴직 1년이 유일하게 가족이 함께 생활한 기간이다. 지금도 아내는 서울에, A는 시골에, 아이는 처가인 충청도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 지붕 한 가족으로, 가족이 같이 모이는 건 2~3달에 한 번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예기치 못한 역병 사태로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하고 할머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 철이 일찍 든 건지 기대가 사라진 건지, 가끔 보는 엄마 아빠에게 별 투정도 하지 않아 가슴이 더 아프다. 뭐하자고 이러고 사는 건지, 이게 사람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A의 푸념에 내 가슴이 다 아린다.


 B는 결혼부터 지금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다복하게 자녀도 세명이다. 미국으로 2년 해외 유학 갔을 때에도 가족과 함께 했고,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까지 B의 근무지에 따라 다섯 식구가 같이 이동하고 있다. 덕분에 첫째는 초등학교를 4개째 다니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빠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 하고, 학교에도 곧잘 적응해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고 가족을 자주 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B는 경기도 평택이 모항인 함정에서 근무하고 있고, 가족들도 그곳에 있다. 올해 3월에 평택을 출항한 함정은 다른 지역으로 2달간 파견 가있었고, 파견을 마친 5월에는 수리를 위해 또 다른 시골로 가 10월까지 지내고 있다. 올해 집으로 퇴근한 건 2달 남짓이다. 가족이 아빠의 근무지에 따라 같이 이동하고 있음에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아빠 따라온 평택에 아빠는 없다.


 아내는 경남 남해군에서 홍보하는 귀농정착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 빈집을 리모델링해 제공해 주고, 농사지을 땅도 빌려주면서 농사법까지 알려주며, 초등학교 전학생에게는 1인당 100만원씩 장학금도 다는 농촌 살리기 홍보를 보고, 지원할까 고민했단다. 어차피 아빠는 집에 잘 못 오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아내와 말과 아이들의 동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C는 부부군인으로 아내도 소령이다. 월급이 두 배로 나온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여유가 생긴다. 부부군인이 한 근무지에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인사정책이 시행된 지 몇 년이 지났다. 정책의 혜택으로 지금 같이 살고 있다. 그런데 C도 함정에서 근무해, 출동 나가거나 파견 가게 되면 한두 달씩 집에 못 들어간다. 올해도 집으로 퇴근한 건 절반이 채 안 된다. 그래도 정박 중이거나 수리할 때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소령 직위는 많지 않아 언제 다른 근무지로 발령날 지 알 수 없다. 내년에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애환을 듣고 있자니 나는 오히려 여건이 좋은 편이다. 손가락이 베여 아파하고 있는데, 옆에 손가락 잘린 친구, 맹장 터진 친구, 다리가 없는 친구들이 있다. 다들 그렇다. 겉보기엔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희망을 가져보려 앞을 내다봤다. 2025년엔 좀 더 나아져있을까? 2030년엔?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결론에 달한다. 잔이 금세 비워지고, 씁쓸한 소주가 술술 넘어간다.

 


 

다들 그렇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모두 기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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