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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4. 2020

시골로 여행 가자

ep. 13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여유가 좀 생길 것이라 기대했다. 아내에게 그땐 장모님과 함께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라 기운도 복돋아 줬다. 막내가 순조롭게 어린이집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여유가 좀 생긴다 싶더니, 역병이 세상을 덮쳤다. 아이들이 몇 주씩 집에만 있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들도 지치고 아내와 장모님도 힘겨워 보인다.


 전선의 난맥상은 나이질 기미가 없는데, 코로나는 사람들의 이동을 막아버렸다. 군대는 많은 인원이 밀집해 생활한다. 전염병이 확산되기 쉬운 구조이기에, 지역사회의 전염병 예방 단계보다 한 두 단계 더 강하게 통제한다. 별거부부의 이동도 통제되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날이 몇 달씩 이어졌다.


 집콕 중인 아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줘야겠다는 생각에 추석연휴를 기해 내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데려와 열흘 정도 지낼 계획을 세웠다.

 작전명은 ‘시골여행’


 이전부터 아이들이 내려오면 구경시켜줄 생각으로, 주말마다 시골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갈만한 장소를 물색해 놓았다. 시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어 무던히도 돌아다녔다. 아이들에게도 아빠 사는 곳 여행 가자고 운을 띄웠더니 며칠 전부터 시골 간다고 신이나 여기저기(그래 봤자 할머니 할아버지) 소문내고 다녔다.     


 시골로 혼자 이사오며 TV를 연결하지 않았다. TV를 볼 일도 많지 않거니와, 별생각 없이 튼 TV빠져들어 관심도 없던 프로그램을 한참이나 본 기억들이 있어 그런 낭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놓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거실을 가족 서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환경이 습관을 만드는 법이다. 책이 있으면 책을 보고 TV가 있으면 TV를 본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그렇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며, 어른들이 하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낀다.


 소파와 TV(나오지는 않지만) 있는 거실을 책장과 책상으로 채워, 아침에 일어나 엄마와 아빠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하나씩 책을 들고 책상에 앉는 꿈을 꾼다. 이번 기회에 실험해봐야겠다 싶어, 가구 대이동을 감행한다.


 소파와 TV장을 작은방으로 옮기고 책장과 책상을 작은방에서 꺼내 거실로 옮겼다. 작은방에 TV장과 소파가 들어가니 문이 다 열리지 않고 중간에 걸린다. 고민하다 문을 떼어내 버렸다. 예전에 33평에서 살다가 16평으로 이사 갈 때 썼던 전술이다. 굳이 문이 없어도 되는 공간이 있고, 문 하나 포기하면 공간 이득이 매우 크다. 공간을 재배치하고 아이들을 맞이했는데, 아이들이 넓은 거실을 매우 만족해한다.


 방 문 따윈 필요 없다.


 아이들은 집에 와서 키즈카페 온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뭐든 처음 보는 게 최고다. TV는 안 나온다고 얘기해줬더니 다음부터 찾지도 않았다. 이번 시골여행은 내년에 같이 살 수도 있는 집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놀이터도 처음 가보는 곳이니 신이나 한참을 놀았다.


 관사는 지은 지 5년밖에 안된 새 아파트라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고, 아이들이 놀 공간이 넉넉했다. 이전에 살던 곳은 모두 현관 앞까지 차가 들어와 아이들이 뛰어놀기 위험하고, 항상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래서 새 아파트를 좋아하나 보다 싶다. 아이들 없을 땐 그런 게 신경도 쓰이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같이 다니다 보니 편리성이 체감되었다.


 아내는 첫날 지나고 마음에 든다며 시골로  이사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내년에 학교들어갈 첫째 등굣길을 따라 걸어보며 시뮬레이션도 해봤다.


 추석 연휴 앞에 휴가를 좀 보태 일주일간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날씨도 좋았다. 산으로 바다로 공원으로 쏘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이 좋아했지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이렇게 매일 노는 건 아닌데 시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관사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상태가 좋았고, 아이들 키우기에 주변 환경도 좋았으며, 아이들도 만족했으나 걸리는 것이 있다. 처음 별거하게 된 이유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둘째가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병원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번이니 내가 하루 휴가 쓰고 아이들 돌보면 되지만, 교육이나 파견을 가게 되면 한동안 집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 처갓집에선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아내 혼자 해결해야 한다.


 아내와 논의가 깊어진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같이 살자고 이야기했다가도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커가는 아이들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 같이 살 수 있는 날도 많지 않다. 변수는 몇 개 남지 않았다. 내가 시골에 1년 더 있을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조금 있으면 결정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닥치면 또 다 해나간다는 생각을 굳혀간.      




 하면 또 다 한다. 어딜 가던 환경에 적응해 사는 것이 사람이다. 얼음으로도 집을 짓고, 사막에서도 마을을 꾸려 살아간다. 흔들리는 배에서도 잠을 자고 밥도 먹는다.


 포기할건 포기하고 살아도 되지않을까? 아내를 설득해본다. 사실 나를 설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골 하늘은 오늘도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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