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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2. 2020

별거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일상

ep. 11


 결혼 후 첫 별거이고, 아이들과도 처음 떨어졌다. 첫째는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같이 지냈다. 둘째가 어릴 때 나는 첫째를 전담 마크했다. 조막만한 손을 잡고 온 동네를 쏘다니고,  인근 백화점과 마트를 순회 탐방했다. 마주 앉아 키득거리며 자장면과 감자튀김, 아이스크림과 빵을 나눠 먹었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도 자주 놀러 가며 많은 시간을 함께해 유대감이 깊었다.


 3살인 둘째는 본격적으로 부자간의 유대감을 쌓여가던 참이었고, 막내는 이제 100일이 지나 아빠 얼굴도 구분하지 못 할 때였다.  


 짐을 싸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지방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날까지 첫째에게 말하지 못했다. 출근하듯,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떠났고, 아내는 그날 저녁 아빠 안 오냐는 첫째의 물음에 내가 미리 적어놓고 간 편지를 내밀었다. 놀란 듯 한 표정이었지만, 주말이면 올 거라는 말에 이내 수긍했다고 한다.   

둘째와 막내는 말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시작은 큰 무리가 없었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하니, 얼마 전까지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육아전선에 투입되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휴전 협정된 기분이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넉넉하고 낯설었다. 보직을 이동하면 새로운 부대와 일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다. 혼자 있으니 바쁜 시기도 부담이 없었다. 일찍 출근해 차분히 하루를 시작하고, 할 일이나 봐야 할 것이 더 있으면 저녁시간 지나도록 여유 있게 처리했다. 빨리 집에 가도 별게 없었기에 운동도 하며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혼자 내려오는 것으로 결정한 이후, 이 기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TV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TV를 연결하지 않았다. 지금은 TV를 보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 수 있는 시대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운동과 독서, 경제 공부였다. 달리기와 근력운동을 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열심히 읽었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앉아 책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김조한이 부른 노래 가사가 마른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중략) 책 속에 빠져서 낯선 세상에 가슴 설레지. 이런 인생 괜찮아 보여 나 너무 잘 살고 있어. 헌데 왜 너무 외롭다 나 눈물이 난다...’


 (가사를 보고 김조한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우린 친구라고 불러도 괜찮을 나이대일 것이다.) 노래 제목이 ‘사랑에 빠지고 싶다’라는 것은 지금 가사를 찾기 위해 검색해보며 알게 되었다. 제목보다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곡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올랐고, 한동안 흥얼거렸다. 지금 내 상황과 딱 들어맞았다. 한 부분만 빼고.


 난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만 애처로워 보이지 않기 위해 외롭지 않다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를 성장시키는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고, 인생과 삶, 경제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다 보니 시간은 잘 흘러갔다.

      

 한번씩 처갓집에 올라가면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니 더 사랑스럽고 애틋했다. 내려올 땐 가지 말라고 우는 아이들을 떼어 놓으며 가슴 찌릿함과 뭔지 모를 안도감도 느꼈다.      


 처갓집에서 아이들과 걸쭉하게 놀고 오면 시골의 여유가 한층 돋보였다.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할 수가 없다.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흘러넘쳤다. 책을 읽다 보니, 내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언젠가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글을 써내려갔다.

    

 처음엔 블로그에 썼다. 경험을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은 읽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려니 하며 꾸준히 써내려 가는데, 동기부여는 못해줄망정 뒷다리를 잡는 게 아닌가. 블로그는 여전히 정보를 공유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창구로써 유용하게 기능하고 있지만, 이면에 상업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고심해 다듬은 글에 달리는 의견은 광고나 홍보가 대부분이었다.


 동력을 잃어 갈 때쯤 언젠가 한번 본 브런치가 생각났다. 깊이 있게 쓴 글은 브런치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작가 신청을 했고, 그 길로 브런치에 움을 텄다. 다른 이들의 글을 보고 감탄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혼자 있기에 가능했다. 아이들과 함께 했다면 감히 써내지 못할 양이었다. 시간적, 정신적 풍요를 글로 풀어냈다. 별거부부 생활은 이렇게 또 다른 유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는데 자부심도 느낀다.     

 



 그렇게 별거부부의 일상에 차츰 적응해 나갔지만, 마음 한편에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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