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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3. 2020

아이들이 남의 아이처럼 크고 있다.

ep. 12


 평온했던 처갓집은 순식간에 육아전선의 격전지가 되었다. 세 아이가 집을 장악하고 온 집안을 뒤흔들어 놓았다. 처갓집에 가서 전선을 둘러볼 때마다, 험난한 격전지를 맡겨두고 후방에 내려온 보충대 마냥 편치 않은 마음이 일었다.


 청소와 정리를 해도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상황의 무한 반복이다. 집안 살림도 거덜 나고 있다. 소파와 매트는 조금만 틈을 보여도 아이들의 매서운 손가락에 뜯겨나갔고, 안마의자는 매달려 흔드는 통에 서서히 부서져 갔다. 막내는 구석에 숨어들어 벽지까지 뜯어놓고 있다. 손가락이 들어갈 공간을 찾아내면 네임펜보다 얇은 손가락이 어김없이 빈틈을 헤집고 들어간다. 처음엔 죄송스러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갈 때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나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장인어른께서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능력이 탁월하셨다. 아이들이 ‘하부지 하부지’하며 졸졸 따라다닌다. 하부지 방에 들어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한참을 놀다 땀에 젖어 거실로 후퇴해오곤 한다. 장모님은 ‘나는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까지 이뻐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될 만큼, 아이들을 사랑해주신다.


 남의 아이는 빨리 크는 법이라고 한다. 한 번씩 볼 때마다 쑥쑥 커있으니, 매일 보는 내 아이보다 빨리 큰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남의 아이처럼 크고 있었다. 100일을 갓 넘었던 막내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더니 이내 두발로 대지를 딛고 몸을 일으켰다.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둘째는 어느새 화장실 벽에 붙은 유아 소변기에 자연스럽게 볼일을 보고 있다. 첫째는 그림 실력이 점점 늘더니 이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미술 거북이인데 맹수가 뒤를 쫓아 달려오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하고 싶다. 물론 지금도 처갓집에 가서 난리통을 체험하고 돌아오면, 혼자 있는 게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편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의 도리도 아닐뿐더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고 또한 보람차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같이 보고, 만지고, 같이 울고 웃고 싶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자녀양육에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지금은 조부모님의 도움이 보편화되었다. 여유를 갖고 편하게 지내셔야 할 시기에 부담을 드린 것 같아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둘째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할머니라며 커서 할머니랑 결혼하겠다고 한다. 애간장 녹는 할머니 사랑에 웃음이 절로 난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콩나물 자라듯 쑥쑥 자라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으면 한다. 아이들이 크는 시간도 돌릴 수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도 되돌릴 수 없기에.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소중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길 바래본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곁에 있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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