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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1. 2020

큰 병원 가보라는 말의 무게

ep. 10


 집이 쓰러져 간다고 삶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그 안에서 행복하게 잘 지냈다. 16평 작은집, 쌓여있는 짐 속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동료들과 가족끼리 모여 정을 나누곤 했다.


 그곳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딸-아들의 200점 테크트리를 완성해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을 받으며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갔다.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싶게 모든 것이 술술 풀려가던 그 시절, 불편한 말이 들려왔다.


 동네 소아과에서 백일도 채 안된 둘째의 심장소리를 듣던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 가본 다른 소아과에서도 큰 병원을 권유한다.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잘 크고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아내와 얘기했다.


 ‘그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가서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자. 짚고 넘어가야 마음이 편할 테니.’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방문한 병원에 둘째는 바로 입원했고, 큰 수술까지 마치고 퇴원했다.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아내와 마음을 합쳐 잘 이겨냈고,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도 힘을 보태주셨다.


 상상하지 못할 일도 내 일이 되면 헤쳐나간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아과 병동에 있으며, 다양한 아픔을 마주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일상 속에서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을 보고 살지만,  병원에선 쉽게 상상하지 못할 상황을 이겨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살아갈까 싶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갔고, 아내도 첫째도 잘 이겨냈다.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둘째는 귀여운 여자 동생을 맞이했고, 다섯 식구가 완성되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가족이 함께 이사 다닐 계획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둘째가 1달에 한번 수술한 병원에 가야 하고, 더 자주 가거나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 멀어지면 부담이 커졌고, 돌도 안 된 막내를 떼어 놓고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방으로 보직이동이 결정되었다.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방으로 같이 가면 1달에 한번 병원 가는 것도 부담이지만, 아이가 입원하기라도 하면 일이 커졌다. 내가 일정하게 출퇴근한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파견이나 교육으로 몇 달간 집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땐 아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고민 끝에 아내와 아이들은 수도권에 있는 처갓집으로 들어가고, 나만 시골로 내려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처갓집에 얹히는 상황이라, 기존 집에 있던 가전과 가구들을 옮겨놓을 곳이 없었다. 시골에 관사를 신청해 집안 살림을 모두 옮기고, 처갓집에는 옷가지와 책, 장난감 정도만 챙겨갔다.      




그렇게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그 이상일지 알 수 없는 예기치 못한 별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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