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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10. 2020

33평에서 16평으로 이사를 결심한 이유

ep. 9


 첫째가 100일을 갓 지났을 때 새로운 부임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집 증후군을 염려하는 호사를 누리던 33평 관사를 떠나 새로 이사해야 할 곳은 70년대에 지은 5층짜리 16평 아파트였다.

 새집에서만 4년 살다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16평 관사에 짐이 다 들어갈지 걱정이 앞섰다. 마침 그곳에 살고 있는 동기가 있었다. 휴가를 내 방문했고, 방과 부엌, 화장실의 크기를 재서 돌아왔다. 집에 있는 가구들의 크기를 재고 방에 어떻게 배치할지 그림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답이 안 나온다.


 70년대에 지은 아파트는 크기도 크기이지만 지금과는 다른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집 구조를 통해 예전 생활을 넘겨짚어 볼 수 있을 정도다. 먼저 냉장고 놓을 자리가 없다. 당시 냉장고가 없었나 보다. 싱크대에서 뒤돌아서서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벽이 있다. 그 정도 공간이 주방의 전부다.


 식탁 놓을 공간도 없다. 방에서 상을 펴고 먹었나 보다. 냉장고와 식탁을 버리지 않으려면 방 안으로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에 냉장고와 식탁이 들어가니 가득 찬다.


 다음은 세탁기가 문제다. 그 옛날엔 가사노동의 페러다임을 변화시켰다는 혁명적 가전제품, 세탁기를 상상하지 못했기에 한 평 남짓한 베란다는 세탁기를 품을 수 없는 크기였다. 어쩔 수 없이 비좁은 화장실 한편에 세탁기를 둬야 했다. 세탁기에 튀긴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남은 건 안방과 거실(이라 부르기 민망한 작은 공간)뿐. 침대, 서랍장, 소파, 책상, 책장, TV장, 장난감이 모두 여기에 들어가야 한다. 3단 서랍장 위에 TV장 그 위에 TV를 놓고, 책상 아래와 옆에도 빼곡히 짐을 밀어 넣고 포개, 테트리스 하듯 짐을 쌓았다.  


기존 새집과 새로운 헌 집을 모두 본 이삿짐 아저씨가 묻는다. ‘아니, 저 좋은 집에서 어떻게 여기로 이사 오시게 된 거에요?’


‘아.. 망해서요ㅎㅎ’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부대 이전이 계획되어 있어 우리가 나갈 시점에  허물 예정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집을 뜯어 고치든 부수든 마음대로 살라고 한다. 방문은 아이보리색 페인트로 칠하고, 전등 스위치엔 매니큐어로 그림도 그렸다. 벽엔 구멍을 여기저기 뚫어 가방이나 아기띠와 같이 걸 수 있는 짐들을 모두 걸었고, 현관문도 밝은 페인트로 칠하니 나름 신선한 느낌이 살아났다.      


 그 좁은 집에 들어갈 결정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전세를 얻을 생각을 못했다. 주변 15분 거리에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어, 전세 가격이 저렴했다. 그곳으로 전세를 얻어 들어간 부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출받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방법도 모르고, 뭔가 불안했다. 무엇보다 티끌만 한 불안요소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두 번째 이유는 16평에서 세 자녀를 키우는 선배도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33평에서 호사를 누리다 보니 이곳이 작아 보이는 것이지, 다들 잘 살고 있었다. 우리라고 못 살 것도 아니다. 우리 애기는 1명인데 자녀 3명을 키우는 집에 비해 얼마나 넉넉한가. 노숙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노숙이 익숙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다 보니 적응한 것이지. 적응의 섭리를 믿기로 했다.    

 

 2년만 지나면 떠난다는 목표의식도 한 몫했다. 정해진 교육기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으로 갈 것이고,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여기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은 없었다. 한 겨울 안방 벽에 살이 닿았다가 너무 차가워 깜짝 놀라 잠에서 깨더라도, 키득키득 웃어 넘겼다. 희망을 품고 살았기에 둘째도 가졌고, 낳으면서 새로운 집으로 옮기며 해방감을 느꼈다.  

 



 살아보니 그랬다. 다 적응하고 산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쓰러져 가는 16평 집에 살았던 생활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지나고 나면 기억은 순화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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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엔 새가 죽어있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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