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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9. 2020

니가 애 낳는 건 아니잖아?

ep. 8


 아내의 배가 터질 듯 커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몰려온다. 인체의 신비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배가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변화와, 산고의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남자 뱃속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때가 온다면 내가 선뜻 아내 대신 임신하겠다고 할 수 있으려나? 시답잖은 상상을 이어가던 그 더운 여름날, 아내의 출산이 임박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오후 2시쯤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진통이 온다고 했다.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업무 정리하고 출발하는데 20분, 부대에서 집까지 20분, 빨라야 40분. 마냥 기다릴 수 없던 아내는 먼저 병원으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머리를 감고 나선 아내는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에선 ‘오늘 저녁에 미역국 드시죠’라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나 지금 분만실로 들어가. 오면 바로 분만실로 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안 그래도 더운 날 초조함에 운전석 시트가 촉촉이 젖어간다. 병원에 도착해 급히 분만실을 찾아 들어서자 간호사가 장갑과 가위를 건네주며 준비하라고 한다. 아내에게 인사하고 몇 번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아이가 태어났다. 조금만 늦었으면 출산을 같이하지 못할 뻔했다. 천만다행이다맞지예?  


 당시는 남편의 출산휴가가 3일이었다. 이마저도 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휴가일에 포함해야 할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금요일에 낳았으니 토일월을 휴가로 계산해야 할지, 휴일을 빼고 월화수를 휴가로 해야 할지 애매했다.(지금은 휴일을 제외하고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휴가(연차) 하루 쓴다고 ‘왜 가냐, 꼭 가야 하는 거냐’는 질문을 들었던 게 불과 2년 전이었다.


 2014년, 당시 선배들에게 출산휴가는 생소했다. 아이들이 다 컸기에 육아 지원정책과 제도의 변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휘관에게 출산휴가를 월요일 하루만 쓰겠다고 했다. 나름 자체 조정을 거쳐 출산휴가 기간에 주말을 포함시키고 최소한의 배려를 요청했던 것인데, 지휘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엥? 출산휴가? 니가? 거기서 뭐하게?’


 악의는 없었다. 제도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도 출산휴가 갈 수 있다는 걸 모르셨던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 남편도 출산휴가 3일을 갈 수 있습니다.’라고 다소 민망한 말을 꺼냈다.


 ‘음.... 그래?’ 잠시 뜸을 들이시고는, ‘그래.. 갔다 와!’라는 말로 큰 결심과 배려임을 에둘러 표현하셨다.


 내심 월요일 하루 간다고 하면 화요일까지는 갔다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용기 내서 출산휴가 이야기를 꺼내 하루라도 얻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금쪽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아이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공부하고 연구해 아이 이름을 지었다.(이후 탄력 받아 세 아이의 이름을 모두 짓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년 후 둘째를 낳을 땐 인식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남편도 출산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비정상이 되었고,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과 가족 친화적 제도의 발전으로 지금은 출산휴가가 자녀수와 상관없이 10일이다. 천지가 개벽하고 있다.


 결혼하고 셋째가 태어날 때까지 7년을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에 이어 서울까지 이동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나이도 깔끔한 책장처럼 정리정돈이 잘 되었다. 1살, 3살, 5살.

     



그렇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았던 동거생활은 곧 분기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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