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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8. 2020

간호사가 환자에게 반말하는 동네

ep. 7


  신혼생활을 시작한 시골은 관사를 새로 지어, 지은 지 3년 된 신축 아파트에서 첫 살림을 꾸렸다. 주거비용 걱정 없이 결혼할 수 있기에 관사가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무려 신축 아파트라니.


 그 집엔 처음 보는 첨단 기능들이 있었다. 안방 전등은 리모컨으로 수 있었고, 인터폰으로 엘리베이터를 부르거나 난방과 가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 싱크대 아랫부분을 발로 툭 차면 거품 묻은 손으로 수전을 만지지 않고도 물을 틀 수 있고, 벽에 붙은 동그란 청소관에 호스를 연결해 빨아들이면 쓰레기와 먼지들이 벽 속을 타고 베란다 쓰레기봉투로 밀봉되어 모여들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새 아파트 기본 설비들이지만, 그땐 신문물이었다. 그것도 관사에서 말이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새집 생활 6개월 차에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어떤 낡은 관사로 갈지 걱정이 많았는데, 웬걸. 새로 가는 곳도 관사를 새로 지은 것이 아닌가. 심지어 내가 전입하는 시기에 완공되어 층을 골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빈집이 널려있었다. 크기도 첫 집의 25평에서 33평으로 더 커졌다. 새 아파트에 첫 입주를 하게 된 것이다.


 심시티(도시건설 전략 게임)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집이 지어졌다.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운은 다 쓴 거 같다. 앞으로 어떤 집에 살아도 불평하지 말자.’ 말이 씨가 되었는지, 역대급 관사에서 사는 날이 온다.


 지방에 근무하면 그 지역의 정취와 특색을 온전히 느낀다. 여행으로는 알 수 없는 지역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넓지 않은 국토의 한 나라 사람들임에도 지역별 문화와 특성이 있고, 아내와 난 그런 낯섦과 생경한 느낌들을 즐겼다. 늘 보던 것만 보고, 하던 것만 하면 무미건조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면 재밌는 일도, 아내와 나눌 얘기도 많아진다.


 다행히 근처에 큰 여성병원이 있어 첫째를 임신하고 그곳으로 진료를 다녔다. 아내가 병원에 다니면서 간호사들의 말투가 너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간호사들이 사투리가 정말 심하고 환자에게 반말 비슷하게 한단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도 한번 가서 보고 싶었다.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간 날, 간호사가 생글생글 웃으며 하이톤으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00씨 오늘 피검사한다. 맞지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어법이란 말인가.


 더 웃긴 건 한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간호사가 같은 어법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남편분이랑 같이 들어갈 거다. 맞지예?’ 이렇게 말하라고 교육하나 보다 생각하니 더 웃기다. 이 어법을 구사하는데 띄어 읽기가 매우 중요한 듯했다. ‘했다. 맞지예?’가 아니라 ‘했다맞지예?’ 다. 한 단어처럼 붙여 써야 한다.


 반말인 듯 묘하게 반말 아닌 재밌는 말. ‘다음 예약 11일 2시 확인했다맞지예?’까지 듣고 병원을 나섰다. 아내와 걸어가며 키득키득 웃었다. ‘교육을 저렇게 받는 건가ㅋㅋ 진짜 신기하다맞지예?’


 첫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같이 살았기에 병원 다니며 신기한 말투도 듣고, 뱃속의 아이가 커가는 신비로운 시간과 경험을 함께 했다. 별거했다면 그 천둥 같던 심장소리도, 조막만 한 손가락도, 신생아로서는 말도 안 되게 높은 콧날도 같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퇴근 후 해변을 산책하고, 공원으로 등산로로 나들이 다닌  일상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추억의 장소가 늘어간다. 어떻게 변화했을지, 그 통닭집과 꽈배기집, 고등어집은 그대로 있을지 궁금하다. 아이들과 함께 가더라도 이런저런 해 줄 얘기들이 쌓여간다. 억이 풍요로워지고 반가운 장소가 많아진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할 수 없는, 그 시기에만 가능한 일과 경험이 있다. 젊은 날 여행처럼 다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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