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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5. 2020

자기 결혼식에 못 온 남자

ep. 5


 군인은 거주와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기태세가 있어 일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에, 아프고 시린 추억들이 쌓여가고 있다. 개인의 사정을 고려해주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부대의 임무와 목적이 맹목적으로 우선시 되었던 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오래전엔 더 그랬다. 어느 고참 선배의 이야기다.  


 그는 섬에 근무했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에게 섬은 군사적 요충지다. 육지에서 관측할 수 없는 먼 곳까지 시야를 틔워주고, 접경지역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전진기지이기에, 많은 군인들이 섬에 근무한다.


 고속정 정장으로 근무하던 그의 기지는 서해의 외딴섬이었다. 출동을 나가면 바다로, 복귀하면 섬으로 돌아와 대기하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결혼을 계획했다. 함정 근무자는 대부분 수리기간에 결혼을 계획한다. 보통 1년에 1~2달짜리 수리가 두 번 정도 있어 이 기간에 휴가도 가고, 휴식도 취하는 것이다.


 그도 수리기간 중 결혼날짜를 잡았고 일정에 따라 수리를 준비했다. 결혼식 1주일 전, 출동 중이던 다른 함정이 고장 났다. 경계 공백 방지를 위해 그의 고속정이 고장 난 함정을 대신해 섬으로 들어가야 했다. 상부에서는 그에게 3일간 섬 대기를 명했고, 결혼식 전 다른 함정으로 교대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불안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3일이 지나고 교대일이 되었는데, 바다가 사나웠다. 함정은 크기별로 운항이 제한되는 파도의 높이가 있다. 고속정의 경우 파도의 높이가 3m를 넘으면 출항할 수 없다. 배의 요동이 심해 정상적인 항로 유지가 어렵고, 침몰의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높아진 파고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군 긴급통신망으로 결혼식 준비 상황을 전달받았다.


 무심한 바다는 그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했다.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 파고가 높아 육지로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이미 결혼식 아침이다. 친인척들은 전날 시골로 내려와 하룻밤을 묵었다. 휴대전화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먼 곳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신 분들에게 결혼식 연기를 알려드릴 수단도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신부 측에서는 지금 와서 결혼식을 미루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랑 없이 결혼식을 진행할 것인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이내 결혼식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가 결혼식장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결혼식을 망칠 수 없었던 그는, 묘안을 짜냈다. 신부 측 하객 대부분은 신랑의 얼굴을 모른다. 신부 부모님만 신랑을 알 뿐이다. 그는 체격이 비슷한 동기에게 신랑 대역을 부탁했다. 신부 측에서도 결혼을 미루거나 신랑 없이 식을 진행하는 것보다 구색을 갖추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객으로 온 동기는 졸지에 일일 신랑이 되어 성혼 선서를 하게 되었다.


 내가 들은 '라떼' 이야기 중 가장 황당한 결혼식 이야기다. 그 이후로도 '신랑 대역'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으로 결혼식을 연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다행히(?) 나는 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도 개인 사정보다는 부대 임무가 우선되는 분위기였고, 휴가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쓸 수 있었다. 자기 결혼식에도 못 가던 그 시절을 지나온 당시 과장님은 휴가에 매우 인색하셨다.      


 엄마가 눈 수술을 했다. 금요일 하루 휴가를 쓰고 싶다고 과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왜 휴가를 가는지’ 물으신다. 당시는 연휴가(직장인의 연차)도 이유가 있어야 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엄마의 수술을 얘기했더니 물으신다. ‘니가 꼭 가야 되는 이유가 뭐지?’ 말문이 막혔다. 부대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아닌데 수술한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게 휴가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심지어 부임하고 5달 만에 처음 휴가를 신청하는데도.


 이런 시절, 결혼 준비도 쉽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위해 여권을 신청해야 하는데, 시청까지 40분 거리를 갈 시간이 없어 마음 졸이다 막바지에 겨우 신청했다. 아내 혼자 신혼여행 갈 뻔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신혼여행은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줬다. 신나게 놀다 보니, 내가 원래 뭐하던 사람인지 잊을 정도였다. 처음 느껴보는 온전한 자유와 해방감이었다.


 즐겁던 시간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시골에서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골에 관사를 새로 지어 지은지 3년된 신축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다.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론 이렇게 새 아파트에 살 일 없을 거야. 마음껏 즐기자'     

 

 그땐, 앞으로 우리가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이전 05화 아내가 영화관에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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