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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4. 2020

아내가 영화관에서 울고 있었다.

ep. 4


 아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도 그랬다. 연애하면서 만날 때마다 영화관에 갔다. 개봉하는 영화를 다 볼 기세였지만, 만나는 게 한 달에 한두 번이라 모두 섭렵하진 못했다. 웬만한 기차역과 터미널에는 영화관이 입점해 있어 장거리 연애하는 우리에겐 영화 관람이 최적화되어 있었다.


 결혼을 1달여 앞둔 그날도 영화관에 갔다. 늘 보는 영화였지만, 그날 보기로 한 ‘건축학개론’은 조금 더 기대됐다. 영화의 내용이 자신의 삶이나 경험과 접점이 있다면 더욱 흥미로운 법이다.


 아내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건축학개론’의 줄거리는 아내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을 건너 만나게 된 사연과 비슷하다 생각되어, 영화 시작 전부터 조금 들떠 있었다. 상영관에 입장하는데 직원이 들뜬 우리를 더 설레게 하는 안내까지 보탠다. 영화 끝나고 경품 추첨이 있으니 자막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아내와 얘기했다. '뭔가 되려는 날인가 보다'

  

 영화는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었다. 한가인, 엄태웅, 수지, 이제훈, 조정석에 이르는 실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짜임새 있는 전개에 몰입되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가는 시점에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꺼낸 휴대전화 액정엔 [대대장님]이 떠 있었고, 영화관을 나가서라도 받아야 할 전화였다. 아내에게 [대대장님]이 뜬 화면을 보여주고,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나가려는데 입장할 때 직원이 얘기해준 말이 생각나 아내에게 당부했다.  ‘아까 직원이 영화 끝나고 경품 이벤트 있다고 했잖아, 끝까지 잘 보고 있어, 오늘 느낌이 좋아’ 혹시 아는가 당첨될지!

 

 그렇게 나가서 전화를 받고 상영관으로 돌아오는데 아내가 펑펑 울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로부터 세 시간 전. 나와 친구는 영화관에 미리 도착해 영화관 직원과 마지막 협의를 마쳤다. '영화관 입장할 때,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 할 수도 있으니 끝나고 이벤트 있다고 미리 공지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랑 여자 친구가 지나갈 때는 경품 이벤트 있다고 해주시면 되고요'


 친구에게도 당부한다. '한가인이 제주도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마. 그때가 끝나기 딱 5분 전이니까. 지금 한번 걸어봐' 내 휴대폰 화면에 [대대장님]이 뜬다. '오케이. 사진은 이쯤 계단에서 찍는 게 각도가 괜찮겠다. 여기 앉아 있다가 내가 옷 갈아입고 나오면 계단으로 나와서 이 각도로 찍어줘'


 현장 리허설을 마치고 아내를 맞이하러 나갔다. 경품 이벤트를 기대하며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던 아내는 스크린에 상영되는 프러포즈 영상을 본 것이다. 아내와 나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시작으로 연애할 때의 추억, 그리고 웨딩촬영 사진까지 건축학개론의 시그니쳐 ‘기억의 습작’을 배경음악으로 영상을 제작해 두었다.

 

 나는 아래층에 미리 보관해둔 정복으로 갈아입고 아내에게 꽃다발과 반지를 내밀었고, 친구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 기록을 남겨주었다.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주기도 하고, 어떤 아저씨는 부인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며 빨리 나가자고도 했다.


 그중엔 아내의 절친도 있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정복을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고 올 때, 지금껏 신나게(?) 울다가 뻘쭘하게 기다릴 아내를 염려해 미리 섭외해둔 절친이었고, 내심 아내 친구들에게 소문도 좀 내줬으면 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면 폼 안나지 않는가.


 준비 과정이 쉽진 않았다. 직접 영화관을 섭외하고, 영상은 스토리 라인과 자막을 다 만들어 전문가에게 편집을 의뢰했다. 영화관에선 개인이 이벤트를 한 사례가 없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5분 정도의 영상만 틀어주면 된다고 매니저를 설득했다. 열성적인 나의 태도에 매니저는 제안을 수용했고, 비용도 거의 받지 않았다.  

    

 아내와 만나며 한 달에 한두 번, 어떤 때는 건너뛰는 달도 있었음에도 잘 기다려 준 것이 고마웠고, 전국을 떠도는 여정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남자가 한 방은 있어야지'를 외치며.      


그렇게 결혼 준비를 마쳐가면서, 시골로의 여정을 차근차근 계획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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