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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3. 2020

신혼부터 떨어져 사는건 위험하다

ep. 3

 임관 후 5년간 1년에 한 번씩 이사했다. 혼자인 몸으로 전국을 유람하는 것이 나에겐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일이었지만, 결혼을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혼을 준비할 때 근무환경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선배도 있었다. '몇 년에 한 번 이사할 수도 있다'는 정도로 얘기하고, 굳이 결혼 전부터 먼저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취지다.  


 그런 선배들 중 H선배는 거의 사기결혼 수준이었다. 아내 되실 분에게 본인은 특수한 병과라 거의 한 지역에서 근무하고, 어쩌다 한번 이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혼인신고까지 했다. 부대 행사에 아내분이 오시는데 우리에게 이사 관련 언급을 하지 않도록 교육까지 하셨다.

그땐 인터넷에서 정보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가능했지, 지금은 금방 들통 날 일이다. 아직까지 가족들과 이사 다니며 잘 지내시는걸 보니, 다행히 아직 사기죄로 고소당하진 않으신 것 같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유지한다면 같이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편의 이동에 따라 같은 지역으로 발령을 내주는 직장은 없을 것이다. 프리랜서로 전국 어디에서도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가능성은 있겠으나, 직업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동기 K는 일찍 결혼했다. 아내는 전문직종에 종사했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서울의 원룸에, K는 전국을 떠도는 별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짧으면 2주, 길면 몇 달에 한번 만나던 장거리 연애 패턴이 결혼 후에도 이어졌고, 심지어 만나는 주기는 더 길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K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결혼을 한 건지 안한 건지, 현실감이 떨어져 꿈꾸는 것 같다고 한다. 만나거나 연락하는 횟수는 연애 때보다 더 줄어들었고,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아내를 지방으로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같이 살 수 있는 하나의 경우가 있다.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다. 그런데 임신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도 많은데,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에서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하늘에서 도와준 것인지 K의 능력이 뛰어난 것인 곧 아이를 가졌고,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며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하며 신혼부부의 대표적 갈등인 공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수십 년간 몸에 익은 생활양식과 패턴이 상대의 그것과 충돌하는 신혼 초기의 갈등이 육아휴직을 하며 나타난 것이다. 이 갈등만으로도 님이 남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갓난아기까지 있으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K는 함정을 타고 출동나갔고, 피곤을 한 아름 안고 2주만에 집으로 돌아온 날, 대성통곡하는 아내를 맞이했다.      


 신혼부터 별거는 결혼에 대한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같이 살며 느낄 수 있는 강한 유대감과 서로를 깊숙이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생략된다. 결국 가정의 안정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아내에게 결혼하고 같이 살자고 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전국을 같이 떠돌자는 백지수표도 날렸다. 신혼부터 별거하고 싶진 않았고, 동기 K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했다.


 그렇게 결혼 초기 아내와 동거(?)할 결심을 굳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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