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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07. 2020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ep. 6


 ‘이렇게만 제출하면 되는 건가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며칠 후 등본 떼보시면 가족으로 나올 거예요’ 혼인신고가 이렇게나 간단하다니. 소꿉놀이로 ‘너 엄마, 나 아빠’ 하는 기분이다.


 관사를 배정받기 위해 결혼식을 4달 앞두고 혼인신고했다. 행정적 가족이 되어야 관사를 배정받을 수 있어, 군인들은 보통 혼인신고부터 한다. 혹시 몰라 결혼식 하고 나서도 혼인신고를 몇 달 미루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린 반대였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가 결혼식 전에 틀어지면 어쩌려고?’라는 우려인지 저주인지 모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별로 없었다.(별로 없었다는 건 없지 않다는 말의 변형이다.) 두 번이나 목격했다.


 다행히(?) 결혼식을 했고, 관사도 배정되었다. 그런데 곧 전출이 예정되어 있었다. 신혼살림을 마련하고 바로 이사하면서 새살림을 망가뜨릴 필요는 없기에, 전출 날을 기다렸다. 1달여 후 새로운 임지가 결정되었고, 그렇게 충북의 어느 공기 좋은 시골에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도, 아내도 처음 발을 디뎌본 시골에서 설레는 시작을 함께했다. 시골여행 온 것처럼 재래시장도 다니고, 산과 강도 둘러보고, 운동장에서 배드민턴도 치면서 신혼을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 6시에 민망한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서는 나에게, 아내가 울며 말했다.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났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아내를 꼭 안아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전날 동기들과 대전에서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모이는 동기들을 만나러 같은 부대에 있던 동기 K와 기차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집에서 대전까진 기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제 갓 대위를 달고 각지에서 고생하는 동기들을 오랜만에 만나 신나게 마시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K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돌아오고 있는데, 아뿔싸 잠들었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과음한 게 탈이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 뜨는 기분.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튕기듯 눈 떠보니 기차가 역에 정차해있다. 무슨 역이지? 급히 내다본 차창에는 세로로 ‘대구’라고 적힌 파란색 팻말이 보인다.


 K를 흔들어 깨우고, 객실 내 좁은 복도를 전력 질주해 간신히 내릴 수 있었다. K와 내 핸드폰은 모두 꺼져있다. 시간을 알 수 없어 대합실로 올라갔더니 시곗바늘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역무원에게 상행선 기차 시간을 물어보니, 새벽 5시 첫 기차를 타야 한단다.


 ‘아내가 걱정할 텐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기차역 밖으로 나와 슈퍼에 들러 핸드폰을 충전하고 전원을 켰더니 문자가 쏟아진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울며 제대로 말을 못 하기에, 상황을 설명하고 올라가는 기차를 잘 타고 가겠다고 말했다.


 동틀무렵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하게 현관에 들어서는 내게 아내는 살아 돌아와 고맙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 사람을 납치해 인육으로 만들어 판다는 인육괴담이 퍼져있었고, 아내는 연락 두절된 내가 인육이 되었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술 먹고 핸드폰 꺼져, 밤새 무의식 기차여행 하고 돌아온 남편한테 고맙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 이 사람은 천사인가 싶었다. 걱정 끼친 게 미안했다. 한동안 주변에 무용담처럼 얘기 꺼내며, 자랑 아닌 자랑도 슬쩍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천사는 아니란 것을 곧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같이 살아서 느낄 수 있었고, 체감할 수 있었던 부부의 정이었다. 같이 살지 않았다면 그냥 집에 들어가 잤나 보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같이 사는 것만큼 서로에게 직접적인 생각과 감정의 상태를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혼은 결혼생활 전반에 걸쳐 서로에게 가장 너그러운 시기일 테니, 서로의 실수도 보듬어주고 정을 쌓아가는 시기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 시기가 있어 아내를 더 좋아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하나씩 맞춰가는 맛이 있었고, 부부라는 인식과 연대감이 확고히 틀을 잡았다.


 이런 시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같이 살며 서로를 채워주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시기가 부부의 유대감과 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인육이 되지 않아 행복했던 우리는 다음 해 새로운 임지로 이동해 새 가족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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