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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Feb 10. 2022

그 집엔 새가 죽어있었다.

집 구하기의 어려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사는 내게, 매년 어김없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주거 이동의 압박은 해가 갈수록 그 압력이 높아진다. 여러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터전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거리가 자그마치 410km. 차로 5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 가족들은 2월 중에 이사를 하는 것이 좋다. 학기 시작 전에 어린이집 전원과 학교 전학 절차를 마쳐야 다 같이 어수선할 때 슬쩍 끼어들 수 있다. 이것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그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이기에, 미안한 아빠는 그 시기를 맞추는 것을 이사의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로 삼게 되었다.


해군 장교들은 보통 12월 말과 1월 초에 인사이동을 한다. 2월 말까지는 한두 달의 여유가 있기에, 우선 혼자 이동해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적응과 가족 이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번에 이동한 곳은 해군 최초로 관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영광을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는 해군에서 가장 낡은 아파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지만.  


관사를 관리하는 부탁해 비어있는 집들을 둘러보았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관사는 부대원들의 선택지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빈집들이 늘고 있었다. 주인이 거주한 곳과 임차인이 거주한 집은 기본적으로 관리상태가 다른데, 태생이 임차인만 거주하는 관사는 관리가 정갈하지 못하거니와 비어있는 기간이 늘어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주말을 이용해 모든 빈집 키 10개를 받아 들고 투어에 나섰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전셋집 구하는 심정을 느껴본다. 문 앞에 서서 열쇠로 문을 열 때 집안에 어떤 모습이 '까꿍' 하고 나타날지 설렘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그 짧은 찰나가 유쾌하지 않게 낯설다.


첫 번째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먼저 눈에 들어온 신발장의 필름이 들떠서 거칠다. 구석진 모서리는 필름이 벗겨져 바닥에 뒹군다. 방문과 문틀, 바닥과 천장 몰딩은 옛집 특유의 짙은 갈색으로 침침한데, 베란다와 창틀엔 곰팡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벽지는 10년이 넘은 듯 누렇게 바랬고, 옛 거주자 자녀들의 시기별 성장 기록들이 벽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만했으니 유치원에서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었겠구나, 1년 새 이만큼이나 크다니 폭풍성장이네, 두서너 집 아이들의 성장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다음 집을 향해 문을 나섰다.

 

다음 집도 지난 집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인데, 베란다를 둘러보던 중 타일 위 바닥에 놓인 둥그런 물체가 눈에 스쳤다.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뇌의 신호가 눈에 도달하기 전 눈동자는 이미 동그란 물체를 망막에 담아 분석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내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우 씨’


물체는 색이 검고, 타원형으로 통통하게 생겨 장난감인가 싶었는데, 타원형의 한쪽 끝에 나뭇가지보다 얇은 막대기 두 개가 곧게 뻗어있고, 그 끝은 세 갈래로 갈라져 짧게 구부려져 있었다. 새의 두 발. 죽은 새의 사체였다.  

    

쫓기듯 서둘러 집을 나섰고, 그다음에도 죽은 벌, 곰팡이 범벅 베란다, 무너진 천장을 마주하며 마음도 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전셋집은 임차인을 들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빈 관사는 ‘아쉬우면 고치고 들어오던가’를 써붙여 놓은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은 곳을 메모해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녀야 하나 싶다. 거주지를 옮기는 직업적 특성이 결혼 전엔 큰 부담이 아니더니,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해 아이들 학교에 들어가는 시점에선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녀야 하는가. 결국 한 지역을 정해 가족들은 정착하고 나 혼자 다니는 것이 가족들에게도, 무엇보다 나에게도 스트레스를 덜어 줄 거란 생각에 이른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나만의 위기 타파 방정식을 꺼내본다. 상황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는다. 도저히 안된다면 게임의 룰을 바꿀 획기적인 대안을 고민해본다. 돌파구를 찾아낼지 모르겠지만, 33평에서 16평으로 과감하게 이사했던 것처럼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추억이 되리라 기대한다.


초긍정. 그러면 복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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