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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25. 2020

별거와 동거 사이

ep. 17 


 단계의 전환에는 과도기가 필요하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 미묘한 눈빛의 변화가 있듯이, 전진(D)과 후진(R) 사이에 중립(N)이 있듯이, 별거와 동거 사이에도 모드 전환이 필요하다.      


 2년 동안 처갓집에 살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두 가지 큰 변화를 거쳐야 한다. 첫째, 물건의 이동과 둘째, 관계의 전환이다.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거친 마찰과 삐걱거림이 발생한다. 덜컥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환되도록 관심을 기울여 불필요한 정신적, 신체적 소모를 줄여야 한다.  


 먼저 물건의 이동 국면이다. 처갓집 살림에 얹히다 보니, 대부분의 짐은 시골에 내려와 있다. 아이들 옷과 책, 장난감 중 일부만 가지고 입성한 처갓집에서 2년을 보냈는데, 짐이 자가 분열한 것인지 꽤 많이 늘었다.      


 이사의 가장 큰 유용은 모든 짐을 들어내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한 집에서만 살면 10년이 지나도 꺼내보지 않는 짐이 생기고, 구석구석에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이 쌓이기 마련이다. 이사를 준비하며 짐을 싹 꺼내 정리한다. 시기가 지난 것들과 쓰지 않는 것들을 가려내 버리거나 주변에 나눠준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의 경계에 선 물건들이 많다. 그럴 때면 보통 버려도 별 문제없다.       


 누군가 말했다. ‘집에 불났다 생각하고 다 버려라’고.


정말 그래도 될 법하다. 불난 셈 치고, 불났을 때 꼭 가져 나와야 할 것들만 추려낸다는 마음으로 정리해야 한다.      

 옷을 잘 사지 않고, 심지어 최근 3년간 옷을 산 적이 없는 나도 옷 짐이 꽤 된다. 지난번 이사하고 다음 이사 갈 때까지 한 번도 입지 않는 옷이 절반을 넘는다. 신줏단지처럼 모시고만 다닌다. 깔끔하게만 입으면 된다는 생각인 나는 한 계절에 신발은 두 켤레, 옷은 열 벌 이내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생각은 이런데 막상 잘 버려지지 않는다.      


 아내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엔 버리는 걸 그렇게 아쉬워해 짐이 쌓여만 갔는데, 이번 이사부터 갑자기 과감해졌다. 버리려고 내놓은 것들을 보고 내가 놀라기도 한다.      


 엄격한 잣대에 내쳐지지 않은 물건들만 시골로 내려왔는데, 그것 또한 양이 만만치 않다. 정리를 위해 장모님께서 같이 내려오셨고, 며칠간 정리중이다. 막내가 쓰는데 시기가 지난 물건들은 과감히 버린다. 첫째와 둘째 때에는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 생물학적으로(묶밍아웃?) 막내는 막내가 확실할 것이기에 막내를 지나친 물건은 바로 분리수거 행이다. 최근에 지은 관사라 수납공간은 여유로운 편이다. 물건의 이동 국면은 비교적 순조롭다.    


 문제는 관계의 전환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공간에서 엄마 아빠와 사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함께 사는 구성원이 바뀌니 ‘가족’의 범주가 흔들릴 큰 변화다. 첫째와 막내는 큰 걱정이 되지 않는데, 둘째가 심상치 않다.


 할머니 사랑이 절절한 케빈(둘째의 별칭)은 우주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할머니라고 외치며 안 그래도 야들야들한 할머니의 애간장을 다 녹여놨다. 나중에 크면 할머니랑 결혼할 거란다. 할머니가 '여보'라고 부르면 '어른 되면 여보라고 불러'라며 제법 진지한 편이다. 할머니가 왜 좋냐고 물으니, ‘내가 진짜 좋아하게 생겼어’라며 큰 웃음을 선사해준다.


 이 말은 우리 집 명언이 되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게 생겼어’      


 처갓집에 있을 때, 자러 들어간 방에서 나갈 궁리를 하다 할머니랑 자러 간다는 핑계를 만들었던 친구가, 한 두 번 할머니랑 같이 자더니 어느 순간 할머니 껌딱지가 되어버렸다. 엄마를 차지하려고 셋이 각축을 벌이던 작은방에서 홀로 할머니를 독차지하는 블루오션을 개척해 낸 탐험정신이 기특하긴 하다.      


 그런데 사랑이 점점 깊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시골로 내려와서는 더 하다. 애초에 엄마 아빠와 잘 생각이 없다. 할머니와 작은방에서 꽁냥꽁냥 밤을 보낸다. 잘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우리 자러 가자’      


 할머니는 이사할 때 같이 내려오셔 정리를 도와주셨고, 이제 곧 올라가셔야 한다. 케빈에게 ‘할머니 가시면 어떡하지?’라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난 할머니 따라갈 건데?’


‘엄마 아빠 없어도 괜찮아?’


‘응 난 할머니만 있으면 돼’      


 할머니 눈이 그렁그렁하다. 2년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시다 떨어져 지내는 것도 버거운데 케빈이 연일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니 부쩍 눈가가 촉촉하신 듯 하다.

  

 한편으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우리의 사정으로 처갓집에 2년 살며 도움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훌쩍 떠나며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드린 것 같다.


 아는지 모르는지 케빈은 할머니한테 들러붙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니, 곧 다가올 이별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할머니는 어제도 ‘이제 자러가자’며 잡아 끄는 케빈의 손에 이끌려 촉촉이 젖은 눈으로 방으로 향하셨다.      


내일이면 가시는데, 어떡하지.      


별거에서 동거로의 과도기 중 가장 큰 난관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또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이쯤 되니 케빈이 아무렇지 않게 지내면 할머니가 좀 서운하실 법도 하다. 적절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겨, 다음에 더 반갑게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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