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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Dec 31. 2020

장모님, 합의하시죠.

ep 18.


 '이 정도면 어떠세요?'

 '에이, 그것 보단 더 받아야지'

말씀하시는 장모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좋아.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

        

 처갓집 생활 2년 동안 아이들은 여러 살림을 부수고, 뜯어 놓았다. 안마의자는 잡고 매달리는 통에 팔이 너덜거리고, 소파는 매서운 손가락에 뜯겨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구석으로 숨어든 막내는 벽지까지 뜯어놨다. 이외에도 커튼을 잡아당겨 커튼봉을 부수고 천장 몰딩을 뜯어 놓는다든가 그릇을 깨는 등 자잘한 사건은 수도 없다.   


 시골로 내려오며 장모님께 퇴거 신청을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꿔야 할 것들과 수리해야 할 것들, 그냥 놔둬도 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지금 바꾸는 것보단 다음에 이사 가실 때 새로 사서 가시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가구나 가전제품 한두 개를 사드리는 것보단 필요한 것을 바꾸고, 나중에 교체할 때 쓰시라 현금으로 드리는 게 낫다고 판단되었고, 아내의 의견도 같았다.   


 명목을 어떻게 정할지 아내와 상의했다. 위로금? 뭔가 아랫사람에게 주거나, 안 줘도 되는 거지만 신경 써서 준다는 느낌이라 적절치 않다. 수리비? 너무 지엽적이다. 당장 수리하지 않을 테니 정확한 용어도 아니다. 그래, 합의금이 좋겠다. 받을 권리가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협상의 묘미를 살릴 수 있다. 그렇게 장모님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장모님 합의하시죠 

 협상의 기술을 활용할 때다. 협상을 통해 만족감을 선사해드려야겠다. 협상하고 나서 가장 기분 좋은 상황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합의금을 이끌어냈을 때다.


 거기서 한번 더 기분 좋은 것은? 막상 받은 금액을 세어보니, 최종 합의한 금액보다 조금 더 받았을 때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이 협상을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상황이다. 장모님께 두 가지 큰 기쁨을 드릴 계획을 세운다.  


고려한 금액의 70% 정도를 말씀드린다.

'이정도면 어떠세요?'

'에이, 그것보단 더 받아야지'


이미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계시다.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줘도 괜찮다는 신호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으시네요. 요정도면요?'

'그래 그 정도면 괜찮지'

'네 그러시죠 ㅎㅎ'

       

가실 땐 최종 협상 금액보다 조금 더 넣어드렸다. 최대의 만족을 위해.      


 이삿짐 정리를 위해 시골로 같이 내려와 며칠 머무신 할머니가 올라가신다. 아이들은 2년간 매일같이 붙어 지냈고, 열흘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할머니와 이제 따로 살게 되었다.      


 첫째에게 말해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도 준비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취지로 적는 게 좋다고 조언해줬는데, 절절한 사랑편지를 적어놓았다. 둘째와 셋째는 글을 못쓰니 할머니께 하고 싶은 얘기를 하도록 하고 첫째가 대필했다.      


 요지는 '할머니 우주 끝까지 사랑해', '할머니 갈 때 따라갈 거야', '등 긁어줘서 좋아, 밥 먹여줘서 좋아' 정도.


 할머니 가시는 길에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눈물바다가 되었고 달래줘야 할 아내는 더 울고 있다. 어찌어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섰다.      


 기차역에서 배웅해드리며 아이들의 편지와 합의금을 함께 건네드렸고, 울다가 웃으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엉덩이에 뿔나는데..) 기차에서 아이들이 적은 편지를 보면 또 우실 텐데..      




 요즘은 기차가 편리하게 잘 되어 있다. 수시로 여쭤보고 내려오는 기차를 예약해드려야겠다.


 그렇게 2020년 12월 마지막 날에 온전한 다섯 식구만으로 본격적인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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