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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an 08. 2021

매일밤, 미래를 보는 남자


‘보자보자보자..  어 보인다보인다’

‘나 머리 길어 짧아?’

 ‘머리가.. 짧은데?’  

‘으악 안 돼. 내 머리!’

매일 밤, 나는 미래를 보고 있다.     

  

 시작은 이랬다. 언제부턴가 7살인 메이(첫째의 별칭)가 엄마 아빠의 나이를 궁금해하더니, '내가 몇 살 되면 아빠는 몇 살이야?'를 끊임없이 물었다. 내가 8살 되면 아빠는 몇 살이야? 내가 10살 되면 엄마는? 내가 15살 되면 동생은 몇 살이야? 그러면서 질문은 점차 세분화되어 갔다.


 ‘으아, 나 10살 되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10살 되면 학교 다니고 있지~’라고 했더니, ‘아빠는 어떻게 알아?’라고 묻기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빠는 미래가 보여’


메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경의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진짜? 나 미래 얘기해줘’ 그때가 잘 시간 즈음이었던 듯하다. 아이들은 자는 걸 싫어한다. 자러 들어가는 걸 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잠을 이기려는 건지, 세상을 이기려는 건지 아무튼 전투를 이어가며 방에 안 들어가려고 끝까지 버틴다. 그러는 중 새로운 기회가 엿보였다.

 

‘아빠 집중해서 봐야 해. 방에 들어가서 이불 덮고 집중해서 봐보자’


그렇게 메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불을 덮고 운을 뗀다. ‘몇 살로 가볼까?’

‘음..  10살!’

‘좋았어. 보자보자보자보자..  보인다보인다’


그날 밤부터 방구석 점성술사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 보인다 메이 10살이네. 헉. 메이가 책가방 메고 어디로 막 걸어가. 어디 가는 거지? 어.. 뭐라고 쓰여있다. 푯말이 있네. 3학년 2반. 으앗. 메이야 초등학교 3학년인가 봐. 반은 2반이네’      


 이날을 시작으로 처갓집에 올라가서 메이가 ‘아빠 미래 보여줘’라고 보채면 ‘잘 때 집중해서 봐야 해’라고 미뤄뒀다가, 잘 시간 즈음해서 미래 보러 가자며 물 흐르듯 방으로 들어갔다. 10살, 15살, 20살 하다가 나중엔 40살, 50살까지 가곤 했다.


 매번 새로운 얘기를 만들어내는 게 어렵진 않았다.

 학교, 놀이터, 공원, 학원, 음악, 예술, 체육, 자전거, 여행, 나들이 등 생활 속 소재를 그때그때 꺼내 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과거 경험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희망사항을 풀어놓기도 한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할수록 아이는 말똥말똥해졌다. 소재가 고갈되고 할 얘기가 더 없어지다가, 내가 졸려 말이 헛나오기도 한다. 했던 말 또 하고, ‘그~래~서~어~’라고 늘어지게 천천히 얘기해봐도 쉽게 잠들지 않았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다 묘안을 찾아냈다. ‘메이야 음악시간인가 봐. 무슨 노래지 이게? 잠깐 기다려봐 아빠가 다 듣고 불러줄게’ 하고 가만..히 있다 보면 숨죽이고 기다리던 메이가 새근새근 잠들기도 한다.


 어떨 땐 ‘아직이야? 아직 듣고있어?’라며 오래도록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땐 ‘이제 다 들었다. 불러줄게’라며,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막 부른다.


 ‘구름 낀 하늘은 왠지 니가 살고 있는~’, ‘사노라면 언젠가는 바알근 날도 오겠지~’ 내 마음대로 선곡해 부르면 메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노래야? 이상한데?’ 아니야 이거 배우고 있는데? 끝까지 잘 들어봐.


 돌림노래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며 메이의 콧잔등을 쓸어내리면 이내 숨소리가 골라지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먼저 잔 건지 메이가 먼저 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들곤 한다.


 아이들이 머물던 처갓집에 올라갔다 시골로 내려온 날, 메이가 엄마에게 미래를 보여달라고 했단다. 엄마는 미래 못 본다고 하자, 메이가 한 말.


그냥 아무 얘기나 하면 돼. 아빠도 지어내서 막 하는 거야~


 엄마는 웃음이 터졌고, 그 말은 전해 들은 나는 더 큰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걸 알면서 그렇게 재미있게 듣고, 또 해달라고 조른 건가 싶다. 아빠를 배려해주는 건지 놀려먹는 건지.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지만, 오늘도 메이는 미래를 보여달라 조르고 나는 간절한 주문을 외운다.


'보자보자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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