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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an 14. 2021

자녀에게 주는 첫번째 선물, '이름'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겐 아이들 이름을 직접 지은 것이 그렇다.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살면서 가장 잘할 일 중 하나로 꼽게 된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첫째가 태어나기 전,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빠로서는 특별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아내가 입덧으로 몸져눕거나, 갑자기 헐크로 변한다거나 하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기에 임신 전과 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배가 더 커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던 임신 8개월 어간부터 출산이 임박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고, 아빠가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육아서적을 여러 권 읽었다. 그중 어디에선가 아빠가 이름을 지어줬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는 글을 본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첫째를 무사히 출산하고, 힘겹게 출산휴가 하루를 받았다.


니가 애 낳는 건 아니잖아? (brunch.co.kr)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몰라 선배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작명소에서 이름 서너 개를 받아와 가족 토의를 거쳐 결정하는 듯했다.


 일단,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아이와 평생을 함께할 이름인데, 작명소에서 짓는 배급형 또는 공장형 이름을 건네주고 싶지 않았다. 먼저 양가 부모님께 여쭤보았는데, 엄마와 아빠가 상의해서 짓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셨다.


 여건은 조성되었다. 내가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서관에서 작명과 관련된 책을 다섯 권 정도 빌려왔다.


 발음하기 편하고 뜻이 좋은 한자를 찾아 이름을 지어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작명학의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실리가 중요하지만 명분까지 녹아들면 완성도가 높아지는 법이다. 여러 책을 읽어 본 결과 원리는 유사했다. 성명학의 기본 틀을 이해하고, 읽은 책 중 잘 설명된 책을 골라 다시 한번 숙독해 세부적인 내용을 익혔다.      


 성명학에 대한 기본원리는,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을 적용하여 각자 타고난 선천적인 기운을 이름으로 보강, 발전시키고 후천적인 운로를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생년월일, 이름의 발음, 한자의 기운, 한자 획수 등을 분석해 음양오행 중 약한 기운을 찾아내고, 이름을 통해 보강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책을 몇 권 읽어본다면 보다 이해가 빠를 것이다.  


 책을 읽어 기본 원리를 이해했다는 전제하에, 아빠가 이름 짓는 순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돌림자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사용해왔다. 1980년대생 까지는 돌림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우도 돌림자로 인해 사촌들의 이름이 모두 비슷하다. 최근엔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부모님과 의논을 거쳐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돌림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면, 이름 세 글자 중 두 글자가 정해졌다. 마지막 한 글자는 셋째 단계로 바로 넘어가면 된다.

      

 둘째,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한 글자의 발음을 먼저 정해야 한다. 아내는 의논한 결과 ‘아’ 자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정했다. 발음을 정하고 나면 한자를 찾아본다. 작명 책 부록에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한자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 발음이 나는 한자 중 좋은 뜻을 지닌 서너 개를 선택해 놓는다.      


 셋째, 나머지 한 글자를 결정한다. 첫 글자인 성과 둘째 단계에서 선택한 한 글자에 모든 발음을 대입해 후보군을 정한다. 이때, 발음오행(이름 세 글자의 발음 조화)을 적용하면 나머지 한 글자의 자음이 좁혀진다. ‘수아’, ‘채아’, ‘민아’, ‘아정’, ‘아선’과 같이 여러 후보군을 정한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10개 정도가 좋을 듯하다.      


 넷째, 아내와 상의해 후보군 중 최종 후보 서너 개를 골라낸다. 그리고는 최종 후보군의 발음, 자원오행(각 글자가 지닌 성질의 조화), 수리오행(이름 세 글자의 획수 조화)까지 무난한 한자를 골라 뜻풀이까지 완성한 예비 이름을 추려낸다.      


 다섯째, 양가 부모님께 예비 이름의 한자와 뜻풀이까지 설명드려 의견을 구하고, 이를 참조해 아내와 최종 이름을 결정한다.      


 팁을 하나 전하자면, 세 개의 예비 이름을 설명드리고 양가 부모님 각각에게 두 가지를 추천해달라 하는 게 좋다. 그럼 양가 부모님이 추천한 이름이 8개이기에 추천되지 않은 이름이 없을 것이다. 결국 엄마와 아빠가 최종 결정하면 된다. 양가 부모님께 후보 하나씩만 추천받는다면 본인께서 추천한 이름으로 결정되지 않을 경우 알게 모르게 서운하실 수 있기에, 개인별 복수로 추천받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름을 지어보면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이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생년과 성이 같으면 자원오행과 발음오행에서 어울리는 발음이 서내개로 좁혀지기 때문이다. 특히 생일이 비슷하면 더욱 그렇다.

     

 성명학에도 여러 분야가 있고, 세부 의견에서 통일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랜 기간 내려온 우리의 전통사상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 이왕이면 좋은 풀이가 따르는 이름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해보면, 어떻게 해도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이름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원, 발음, 수리오행의 각 영역에서 서로 상충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큰 기조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로 결정하면 된다.      

 첫째 이름을 짓고 나니, 둘째와 막내까지 이름은 자연스럽게 내가 짓게 되었다. 2년에 한 번씩 이름을 지어본 경험에 비춰보자면,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엄마아빠표 이름을 선물해 줄 수 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한자를 써보며 수시로 보람을 느낀다.      


 작명소용 배급 이름보다는, 엄마 아빠가 특별한 의미를 담아 아이에게 이름을 안겨주는 것이 어떨까?      




 아이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자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을(남을 수밖에 없는) 도전, 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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