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많이 키웠다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아니다. 첫째가 클 때는 잘 몰라서, 서툴러서,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이런저런 실수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되는 일들이 많았다. 둘째를 키울 때는 시행착오를 거쳐 더 잘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근데 웬걸, 이건 또 다른 영역이다. 이전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학 공부하고 영어시험 치는 느낌이랄까. ‘문제 유형과 형식’은 알고 있지만, ‘문제의 내용’이 다르다. 다시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그리고, 새 과목이 이전 과목보다 더 난해한 경우는 드물지 않다.
셋째가 4살이 된 지금, 수학 영어 이후 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수학 영어는 문제부터 뭘 묻는지 몰랐던 상황이라면, 국어는 일단 친숙하다. 문제를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잘 푼 줄 알았던 국어시험이 막상 채점해보면 점수가 가장 낮은 경우도 있다. 쉬워 ‘보인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더 세심하게 꼼꼼히, 함정을 피해 풀어나가야 한다.
오래 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골프 구력 10년을 자랑하는 백돌이(평균 100타를 실력)가 많다. 마음은 싱글(평균 79타를 치는 실력)이고 프로 전향은 귀찮아서 안하고 있지만, 실력은 이제 3개월 열심히 배운 초보만도 못하다. 더 큰 문제는 다 안다고 생각해 연습하거나 노력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퇴화된 실력이 반등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구력만 쌓여간다. 이런 상황에서 구력은 지갑 속에 구겨진 지난주 로또 번호처럼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0년을 근무해도 수준은 입사 3년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익힌 일, 하던 일만 계속하면 발전이 더디다. 부단히 관심을 갖고 여러 직무를 깨우치는 사람에 비해 상대적 실력이 나날이 떨어진다. 하지만 20년차 고참이니, 대접받고 싶고 기대하는 것은 점점 많아진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슬금슬금 뒤켠으로 밀려난다.
요즘 수학이 좀 익숙해지니, 영어와 국어가 갈길이 멀다. 영어와 국어에 집중하려고 마음먹으니, 수학이 이전과는 또 다른 수준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아이 세명의 기질이 모두 다르고,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할 영역이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세 번째 과목이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여전히 미숙하다. 세 과목 동시 연구에 요구되는 학습 용량과 체력도 만만치 않다.
한 부모 밑에서 난 남매들임에도 기질과 성향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성격도, 발달과정도 다양하다. 넷째가 있다면 넷째는 또 어떨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궁금증으로 그칠 예정이다)
오래 한다고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생각 없이 오래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감각이 무뎌질 개연성이 크다. 간간이 아이를 학대해 언론에 오르내리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 중,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력 없이 구력만 쌓인 골퍼처럼, 발전 없이 연차만 쌓여가는 고참처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부단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둘째 셋째라고 쉽지않다. 아마 다섯째, 여섯째도 녹록치 않으리라.
나중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까진 아니더라도, '세 과목, 과락방지법'이나 '평균점수 상향법' 정도 노하우는 쌓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 줄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