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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an 23. 2021

큰 병원 입원실 풍경

 케빈(둘째의 별칭)은 큰 수술을 받았다. 대형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여러 번이다. 나는 대형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아내와 첫째도 그렇다. 케빈을 돌보기 위해 대형 병원 입원실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곳은 본질적으로 아픔과 고통, 슬픔이 서린 공간이다. 동네 병원부터 중형 병원을 거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가장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다. 그렇지만, 삶의 기쁨과 희망, 희열 또한 어른거리는 공간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지 못하는 공간이며, 그럼에도 생각보다 밝은 공간이다.


 아이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면,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를 준비해야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입원을 하게 되고, 병실에 올라와 먼저 입원해 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형병원에는 보통 아이들을 위한 소아병동이 따로 있다. 먼저 입원해 있던 아이들과 보호자를 접하게 되면,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우리의 상황이, 여러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이 보편적 일상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머물고 있고, 각자의 심란한 사정이 스며있음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곳에서는 고칠 수 있는 병이면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 먼저 수술을 받고 회복과정을 거쳐 퇴원하는 사람들도 보게 되고, 모두가 그 날을 꿈꾼다. 남아있는 이들은 퇴원하는 이에게 축하와 응원을 보내고, 퇴원하는 이는 남아있는 이에게 격려와 희망을 전한다. 슬픔과 절망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긍정과 희망의 공간이다.

     

 얼마 전 수술 경과와 복용 중인 약의 효용에 대한 정밀 확인을 위해 3일간 입원해 시술을 받았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입원해있던 사람들이 있다. 개중엔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서는 대게 오래 머물수록 더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다.


 케빈이 5살이 되고 말이 많이 늘었다. 예전엔 병원에서 묵언수행을 했는데, 이제는 재잘재잘 거리며 여기저기 참견도 한다. 같은 병실에 한 살 형을 만났다. 서로 가지고 온 장난감을 바꿔서 놀았다. 처음 보는 장난감이 제일 흥미로운 법이다. 아이가 입원할 땐 처음 보는 장난감을 사줘, 무료함을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형과 장난감을 바꿔 놀다 곧 마주 앉아 놀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엄마들의 대화도 이어진다. 그 아이는 난치병에 걸려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5살이 돼서야 병을 알게 되었고, 수술을 하더라도 일반적인 생활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수술이 잘되고 경과가 좋기를 모두가 염원한다.


 창가에 자리 잡은 여자아이는 중학생이다. 난치병으로 식욕에 집착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풀도 뜯어먹을 정도로 강한 식욕이 이는 병이라고 한다. 딸이 아침 일찍 일어나 먹을걸 찾고 자신의 먹거리를 남에게 주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기에, 엄마는 딸이 안 볼 때 재빨리 다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다. 필연적 슬픔의 공간에서 그렇게 웃음은 피어난다.


 케빈은 밥과 반찬을 먹으며 ‘맛있다. 엄마도 먹어봐’라고 한다. 엄마가 팔베개를 해주자 ‘엄마 팔 안 아파?’라고 묻는다. 낯선 곳을 가거나 위험하다고 인지되면 ‘엄마 조심해’라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5살이 무슨 말을 이렇게 이쁘게 하냐며 또 웃음이 피어난다.   


 검사는 잘 끝났다. 검사 결과 수술 경과가 아주 좋았고, 약효도 좋아 약을 좀 줄여보기로 했다. 그렇게 3일 만에 퇴원하는데 주변에서 뭘 벌써 가냐고 야단이다. 축하를 받으며 응원과 격려를 전하고 떠난다. 그렇게 병실은 순환된다.


 예전 TV 프로그램 중 ‘병원24시’가 있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픔을 이겨내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나가는 모습을 응원했으며, 나의 몸과 정신이 건강함에 감사했다. 나약한 생각을 떨쳐낼 수 있었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형 병원 입원실은 ‘병원24시’의 체험판이다. TV 화면 속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집에 돌아오니 세 살짜리 막내가 ‘오빠 잘했어’라고 칭찬해줬다. 아내가 없는 동안 많이도 울었던 첫째와 막내다. 첫째는 몇 번의 통곡도 있었다. 그러다 엄마 없는 기간을 잘 견뎌내는 막내를 보곤 ‘저렇게 애기가 어떻게 울지도 않냐’며 감탄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긴다.  




 긍정이 피어나는 공간, 그곳에 계신 많은 분들을 응원한다.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밝은 내일을 기원한다.

대형 병원의 입원실은, 슬픔과 절망으로 메마른 바닥을 기어이 뚫어내고 희망과 긍정이 피어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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