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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빠 May 08. 2020

11.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My Way (1969)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이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고 엘비스 이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낸, 걸출한 가수였다. 그도 수많은 영화에 나왔고, 시나트라-스프링스틴-본조비라고 하는 뉴저지가 낳은 위대한 가수들 중에 하나이자 그 선봉장을 맡기도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대표적인 노래라고 하면 무엇보다 1969년의 My Way를 꼽는다. 평소 그를 존경한 캐나다 출신의 가수 폴 앵카가 그에게 헌정한 곡이지만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너무나도 꼭 맞는 곡이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라고 하면 그가 누구인지 잘 몰라도 My Way가 연상 될 정도이니 얼마나 인상적인 곡인지 알 법하다.

필자도 프랭크 시나트라를 좋아하는데, 1998년 우연한 기회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듣고 바로 푹 빠져버렸다. 묵직하고 중후한 중저음에서 뿜어져나오는 발성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랜 관록과 좋은 목소리,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중저음이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가수의 곡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1915년 12월 12일. 뉴저지 주 호보켄이라는 곳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2세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프랜시스 알버트 시나트라(Francis Albert Sinatra)였다.


그의 데뷔는 1935년으로 처음부터 솔로로 활동했다기 보다는 3 플래시스(The 3 Flashes)라고 불린 이태리 이민자 출신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에 합류하면서 4중창인 호보켄 포(Hoboken Four)를 조직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곧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미국 중서부지역과 캐나다 투어를 돌 정도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1940년대 당시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가수들이 이끈 트래디셔널 팝 뮤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생겨난 말이 바로 바비 삭서즈(Bobby Soxers)였다. 주로 12살에서 25살 사이의 십대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 중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가수들을 좋아하고 댄스홀에서 춤을 즐기는 부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시기는 또한 스윙의 열풍이 불었을 때라 많은 십대 소녀들은 고등학교 체육관이나 댄스홀 등지에서 넓게 펼쳐지는 푸들 스커트와 발목을 덮는 양말을 신고 신나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는 했다.


이 때 일반 신발이나 구두를 신게 되면 나무로 된 바닥이 상하기 때문에 신발 대신 발목까지 올라오는 바비 삭스를 신게 되는데 여기에서 파생되어 생겨난 말이다.

이러한 댄스뮤직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프랭크 시나트라였고 자연히 당시 십대 소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튼튼한 팬층을 확보하였고 1950년대를 거쳐 6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는 미국의 국민가수 격으로 인지될 정도의 탄탄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는 가수, 배우,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60년부터 1968년까지 운영했던 리프라이즈 레코드(Reprise Record)였다. 물론 1968년에 워너뮤직이 인수하면서 완전히 넘어갔지만 리프라이스 레코드와 계약이 맺어진 가수들은 에릭 클랩튼, 스티비 닉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즈와 같은 가수들이었다.


1957년엔 ABC방송사와 3년-3백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The Frank Sinatra Show를 방영하기도 했다. 이 때 ABC방송사는 시나트라의 호바트 프로덕션 잔여지분의 60%와, 거기에 더해 시나트라의 영화제작사인 켄트프로덕션을 7백만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또한 1977년엔 TV경찰드라마인 Contract on Cherry Street에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의외로 그는 라스베거스에서 활동을 많이 했고 여기에서도 큰 돈을 벌었다.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라스베거스에서는 고객유치를 위해 많은 돈을 주면서 대가수들을 끌어모았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시저스 팰러스에서 활동을 했었고, 1982년 골든 너겟이라는 카지노에서는 3년 계약에 1600만 달러를 받았다.


다시 My Way로 돌아오면 1969년 곡이기 때문에 나이로 치면 고작 54세때 발표한 곡이다. 50대 중반. 아직 왕성하게 활동을 할 수 있고, 현재도 기업체 중견간부나 초급 임원 수준으로 인식될 정도로 아직 한창때이긴 하지만 1969년 미국남성의 평균 수명이 66.8세에 불과하다는 점(미국남성의 평균수명이 70을 넘긴 건 1979년이다. 2019년 현재 78세.)을 미루어볼 때 이미 그에게는 인생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수순이었을 것이다.


(1969년 미국은 아폴로11호로 달에 첫발을 내딛는다. 경제, 정치, 의학, 과학,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은 1위였고 국민 개개인의 영양상태도 2020년 미국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수명이 70살이 안되다니)


My Way 노래 자체가 가사도 그렇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만큼 묘한 울림이 느껴지는 곡이라 하겠다. 비록 이 노래가 발표되고 나서도 29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인생의 중년을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아직 젊은 사람에게는 앞으로 먼 훗날 내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을때 그 의미를 생각해볼 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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