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ing Queen (1976)
미국에서 외국가수들. 특이 비영어권 출신들은 소외가 크다. 아무리 영어로 만들어도 빌보드 1위를 한번 하기가 쉽지 않다.
1980년대 들어서 Roxette이 그 장벽을 허물었지만 ABBA마저도 유럽과 일본을 위시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이 미국에서는 큰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7년. 전세계를 휩쓴 디스코 열풍을 타고 Dancing Queen이 1위를 차지하고, ABBA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Dancing Queen은 1977년 4월 9일 미국 빌보드 1위를 비롯 여러 국가들에서 1위를 했다. 일본 오리콘 차트 1위(1977년 8월 8일), 캐나다 RPM 싱글차트 1위(1977년 4월 2일~1977년 4월 9일. 2주), 영국차트 6주 연속 1위(1977년 9월 4일~1976년 10월 9일), 그 밖에도 스웨덴, 서독, 네덜란드 차트 1위등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물론 타국가에서의 성공만큼 미국에서 찬란하게 성공을 누리지 못했다일뿐이지 결코 ABBA의 미국진출이 실패로 귀결된건 아니었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ABBA는 20개의 싱글곡을 빌보드 Hot 100에 랭크시켰고 이 중 14개곡이 Top 40안에 들어갔으며, 10개는 Top 20위까지 올라갔다. 또한 Dancing Queen, Take A Chance On Me는 미국에서 각각 1백만장이 팔려 RIAA는 골드인증을 했을 정도다.
ABBA의 Dancing Queen은 디스코, 유로팝, 유로디스코가 녹아있는 노래로, 특히 앞부분의 피아노 선율이 매우나 매력적이다. 피아노의 높은 옥타브를 내는 청아한 선율과 두 보컬인 애니 프리다와 아니타 폴크스코그의 목소리가 정말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을 이룬다. 물론 모든 ABBA의 곡이 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이 곡만 더욱 그렇다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말이다.
다만 디스코이긴 해도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로 2018년 3월 기준 유튜브 공식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2억 4천만 뷰를 기록했다.
노래의 성공을 생각한다면 다소 적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ABBA의 곡들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등을 예전부터 올리곤 했고 그래서 분산되어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닐 것이다.
발표는 1976년에 했고 녹음은 그 전년도인 1975년 8월경에 끝마쳤기 때문에 시장성 파악을 위해서 서독과 일본 TV를 통해 1976년 봄 방영을 했었다. 또한 같은해 6월 18일.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스톡홀름에 위치한 로열 스웨데시 오페라 회관에서 열린 공연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76~1977년. 이 시기가 ABBA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1976년 3월에 내놓은 ABBA의 Greatest Hit이라는 48분짜리 레코드 앨범은 데뷔 2달만에 영국 빌보드 1위에 입성하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앨범차트 50위에 랭크되며 1백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The Very Best of ABBA라는 또 다른 앨범이 1위를 Greatest Hit는 2위를 기록하게 되며 ABBA열풍이 세계를 강타하게 되는 것이다.
서서히 ABBA도 그 음악성을 인정받고 때맞춰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 덕분에 1974년 Blue Swede에 이어 두번째로 빌보드 1위를 스웨덴 밴드가 차지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Year-End Chart에서도 12위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1993년. 스웨덴 여왕의 50세 생일 때, 애니 프리드 링스타드는 여왕에게 Dancing Queen을 불러도 좋겠느냐고 물었고 스웨덴의 5인조 아카펠라 그룹인 The Real Group과 공동으로 아카펠라로 이 곡을 왕과 여왕 앞에서 부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ABBA의 헌정밴드이자 스웨덴의 팝 뮤직 그룹인 ABBA Teens(A Teens)역시 1999년 자신들의 버전으로 Dancing Queen을 다시 출시하고 오리지널 곡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