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었어?

아빠보다 낫다

by 박점복

떼만 쓰면 뭐든지 요술 방망이처럼 뚝딱 해내는, 능력이 거의 하나님 수준쯤 돼야 하는 아빠랑 함께 나선 나들이였는데 무서울 게 무엇이었겠는가? 세상이 몽땅 제 것 인양 마냥 좋기 만한 꼬마 친구가 아빠에게 불쑥 쉽지 않은 퀴즈를 건넸다.


아빠! 세상에서 내가 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 게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차 아빠는 즉답을 한다. “아빠~?” 머뭇머뭇 긁적긁적할 만도 한데. 아니 자신의 소망을 답인 양 건넨 터였다. 꿈도 야무진 데다가 김칫국까지. 보기 좋게 과녁을 비껴갔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고 섭섭하게도 아들 녀석으로부터 되돌아온 답은 아빠! 땡이란다.


‘그럼 뭘까.......’ 덩달아 궁금해진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들킬 세라 웃음을 꾸겨 넣으며 은근히


‘그럼 그렇지 역시 우리 아들이야. 엄마를 훨씬 더 사랑하는구먼!’


쾌재를 불렀겠지만 ‘엄마’ 역시 정답은 아니었으니.

호기심 한껏 자극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더니만 예상 못한, '가족'이 꼬마 녀석의 입에서 정답으로 튀어나올 줄이야. 가족의 소중함을 꼬마의 대답을 통해 새삼 깨우치다니 뭔가로 심하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찌든 때로 오염된, 틀에 박힌 고정관념으로는 맞출 수 없는 신통방통한 답이라니....... ‘혹시 누가 가르쳐 준 걸까?’ 아니면 ‘깨끗한 감성이 선물한 순수함일까?’ 꼬마에게 물어보질 못했으니 딱히 알 방법은 없다.


‘가족’이라는 정답의 울림이 유난히 크게 내 귓가를 때린 건 습관처럼 식구들과 함께 사우나에 막 다녀온 후라서 그랬을 듯하다. 사우나에 갈 적마다 도리 없이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내가 따로 나뉘어야 하는, 같은 민족 영토를 쓰면서도 넘나들 수 없는 휴전선처럼 분단의 아픔을 실감해야만 하잖던가?


그날도 우연히 함께 근무한 적이 있던 예전 동료를 탕 안에서 만났다. 결코 나는 다시 얻을 수 없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생각이 내 것과 일치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연로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정성껏 보살피며 씻겨드리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림 출처: 네이버 블로그

자식에게 몸을 맡기신 어르신의 삶을 관조하는 듯한 편안함과 세상을 비교적 일찍 등지신 우리 아버님의 고단하셨던 삶이 아프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목욕도 요즘처럼 자주 할 수 있던 세월도 아니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등을 서로 밀어주는 정겨운 모습 또한 횟수가 잦을 리 없었잖은가.


기억이 흐릿한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리라.

부자관계, 미사여구로 꾸민다고 꾸며 봐도 묘사가 쉽지 않은, 그 끈끈함을 딱히 기억 못 하는 지금의 나와 아빠로서 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표시가 겹쳐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사랑하는 딸들과 아내는 이런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을 맘껏 만들어 내길 소망해마지 않는다. 아빠에게 돌아갈 몫까지 듬뿍듬뿍 엄마인 아내에게, 그리고 딸들에게 쏟아 붓기를 원한다면 욕심이 과한 걸까?


분단된 남북처럼 어김없이 갈려야 할 아쉬움을 감수할 때도 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나머지 삶의 현장에서는 가족 사랑을 후회 없이 발휘하리라. 익히 알면서도 현실의 모습은 왜 후회와 반성이 계속되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쉽게 풀리지 않을 과제임은 분명하다.


세상 그 어떤 곳 무슨 상황과도 견줄 수 없는, 천국을 미리 맛보라고 세상에 선물한 '가족'들에게 한참이나 늦은 후 호들갑을 떨며 ‘좀 더 사랑할껄....... 더 아껴주고 배려할 껄......’ 청개구리처럼 껄껄껄’을 외치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 꼬마 친구의 퀴즈 정답 ‘가족’을 맘 속 깊이 늘 간직하며 살련다.



대문 사진 출처: 블로그 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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