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생소한 아드리아해 연안에 발칸반도 최대의 호수인 스카다르가 있다.
"내륙의 아드리아해"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숨을 막히게 한다. 액자 속 그림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마을에 대부분 별장으로 쓰인다는 집들이 동화책에 그것처럼 콕 콕 박혀있다. 그 곳에 세 가구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날따라 여행자를 태운 젊은 어부는 수확이 없다. 그래도 실망하는 기색은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배어나온다.
여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 젊은 어부는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며 배를 몬다. 어부의 외삼촌 내외는 기꺼이 소박한 저녁을 내어 온다.
그렇게 안잡히던 잉어가 세 마리나 된다. 불현듯 나머지 한 가구는 누굴까 궁금해진다. TV속 여행자는 내가 아니니 알 길은 없다.
1년에 한 두번 우리 가족은 충주호를 찾는다.
숙소에서 30분쯤 달리면 강변에 안내판은 커녕 간판 하나 없는 식당이 있다. 말이 식당이지 거실에서 손님을 맞는 민가와 마찬가지다. 누구와 동행을 하건 빠트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이 식당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주문하는 메뉴도 늘 쏘가리매운탕이다. 언젠가 민물매운탕은 입에도 못대는 지인과 함께 온 적이 있는데 한술 맛보더니 남김없이 해치웠다. 자연산 장어가 좋다고 권하는데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바깥 어르신은 매일같이 작은 배를 띄워 그물을 걷고, 그날 잡힌 물고기로 안주인은 상을 차린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부터 어르신이 술을 좋아하시는 건 눈치를 챘다. 빠알간 코 때문이다. 첫 대면에서는 한사코 권하는 잔을 받지 않으셨다. 아주머니때문인건 나중에 알게 됐다. 그런데 술은 창고에 박스채 있으니 마음껏 가져다 마시라고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돈 때문에 못먹어서야 쓰겠냐. 지고 가는 건 안돼도 뱃속에 넣고 가는 건 얼마든지 된다 "며 술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운전을 해야하니 일행 중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마저도 "손님방이 비워져 있으니 다같이 마시고 한 숨 자고 가면 될것 아니냐"며 은근히 부추킨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햇수를 더해가면서 으례 그렇듯 어르신의 삶이 다가왔다.
이 고장 출신이 아닌데 젊은 날 맨몸뚱아리로 흘러들어 왔단다. 너무 배가 고파 그나마 넉넉해 보이는 집 문을 두드려 밥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된다고 자청한 머슴살이다. 절박한 사정에다 타고 난 성실성이 더해지니 얼마안돼서부턴 새경을 주더란다. 그렇게 두 발로 땅을 다지고 손바닥이 소나무 껍질이 될 즈음이 되어서야 장가를 들 수 있었다. 강 건너편에 오막살이로 시작한 살림을 불려 지금의 집을 마련했다. 슬하에 남매를 두셨다는데 연신 벽에 걸린 자식들의 결혼사진,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자랑에 여념이 없다. 그때만큼은 해맑은 웃음이 어린애같다. 다들 가정을 꾸리고 제 몫을 하니 여한이 없단다.
고된 머슴살이에 말술을 마다하지 않던 것이 나이 들어서도 여전하니 몸이 상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시내에서 가끔 옛친구를 만나면 그 술버릇이 여전한데 그때마다 아주머니를 부르신다니 그런 날은 화상이 따로 없었겠다. 식당에서 그 좋아하는 술을 마다하는 이유다. 그래도 안면을 트고서는 내가 우격다짐으로라도 아주머니의 승낙을 받아내면 한 두잔은 그렇게 맛나게 드신다.
언젠가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무리 고주망태가 돼서 쓰러져도 새벽에는 어김없이 배를 띄운다"고... 지난한 세월을 건너 모이 받아먹던 새끼들까지 떠난 단촐한 살림에 무에 그리 필요한게 있을까만 어제처럼 그리고 소싯적 그 날처럼 그물을 걷는다.
"새벽에는 혼자 그물을 걷으세요?"
"아녀~ 같이 나가지. 선장은 내가 아녀 저 사람이지. 여기 주인도 저사람이잖여"
그러고보니 한번도 직접 돈을 받은 적이 었다. 자신은 얼마 받아야 되는 지도 모른단다. 오늘도 어김없이 물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을 낚았을 텐데 설설 끓는 아랫목에서 매운탕에 소주가 간절한 저녁이다.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