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틀면 먹방이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전부터 때 아닌 '설탕' 논쟁이 벌어지더니 곧이어 '막걸리'로 확산되다 지금은 진정국면에 들어선 형국이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한국의 외식업계를 대표하는 백종원과 맛컬럼니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황교익이다. 발단이 어찌됐건 나로서는 묘하고 아리송한 일이다.고객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하는 사업가와 상품의 가치와 의미를 비판하는 평론가가 맞부딪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수년전 중국 심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황러하인안(歡樂海岸 Oct Bay)을 찾았다. 급성장한 중국 경제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그곳에 백종원의 '본가本家'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기름진 중국음식이 물리기도 하던 참이라 주저없이 선택했다. 일행이 여럿이라 종류별로 맛을 볼 수 있었는데 딱히 인상깊은 음식도 없었지만 실망하지도 않았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없던 땅 심천에 세운 중국 경제특구에까지 진출한 내 나라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든든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최근 경영학 교수인 후배와 '프랜차이즈' 관련한 토론을 하다 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영세한 골목 상권을 자본력과 유명세로 장악하는 프랜차이즈식당은 맛의 평준화와 골목상권의 몰락을 부추킨다"는 나의 주장과 "프랜차이즈의 맛과 전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쟁력으로는 어차피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후배의 주장이 격돌했다. 쉽사리 결론이 날 수 없는 주제였고, 그렇게 인식의 차이만 확인했다.
즐겨보던 프로 중에 '알쓸신잡'이 있었다. 통영을 방문해서 나누는 대화중에 정확한 워딩은 잊었지만 황교익이 이순신장군의 선조에 대한 충성심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었다. 목에 가시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던지 곧이어 유시민이 "이순신장군은 왕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전란에 피폐한 백성들에 대한 사랑으로..."라고 수정을 했다.
황교익은 이순신장군의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대중이 보는 방송에서는 좀더 깊이있고 전문적인 영역은 섣불리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는 음식평론을 하며 뇌과학을 들먹이는 말을 하는 경우를 봤다. 폭넓은 지식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쉽게 설명하고자하는 의도보다는 얕은 상식 수준으로 식견을 과시하고 과장되게 표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설탕'과 '막걸리'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과다한 당의 섭취가 해롭다는 것은 정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특정인을 겨냥해서 비난하는 것은 음식평론가로서 섣부른 행동이다. '단맛'으로 인해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없어서 하는 얘기라면 전문가로서 음식의 고유한 정체성과 의미를 부각하는 데 치중했어야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MSG와 GMO(유전자 변형)식품을 재료로 한 요리를 구별해내고 위해성을 부각시켰어야 한다. 물론 이 영역 역시 음식평론가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연히 40년 넘게 냉면을 만들어 온 주방장을 알게 됐다. 동향인 인연으로 가깝게 지내게 됐는데 어느 날 냉면에 대해 이런 말을 하셨다 "동생은 물냉면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육수 맛을 구별할 수 있겠어? 나는 맹물에 미원만으로 똑같이 육수맛을 낼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은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그렇게 하고..." 자신할 수 없었다. 조리사 자격증없이도 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정상에 올라서고 이를 기업화해서 성공한 사람을 비난할 시간에 제대로 된 음식의 맛, 역사 그리고 의미를 알리는 것이 음식평론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전문가영역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진정성과 숨은 내공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치 않다.
최근 '골목식당'이란 프로를 보며 후배와의 논쟁을 떠올렸다. 이미 솔루션을 받았던 식당 주인들의 찬반 의견이 갈린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우려할 일은 아니지 싶다. 이미 상권이 몰락하거나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른 식당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매체를 통해 알려져 그 광고효과로 반짝 호황을 누리더라도 그 매출이 이어지거나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식당 주인의 몫이고 대중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맛만큼 간사하지만 정확한 것도 없다.
나 역시 저마다 특색을 가진 작은 식당이 줄어드는 것보다 생존의 문제가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에 최근에는 백종원의 진정성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아 발품을 더 파는 수고로움을 달갑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남의 글을 교묘하게 칭찬하는 게 비평이다" 평생 250권분량의 문학비평을 해온 고 김윤식교수님의 말씀이다. 비평은 작품을 칭찬해야지 이렇다 저렇다 훈수를 두거나 지침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비평은 조심스럽고 특별한 공감과 칭찬의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신 뜻일게다. 음식이라고 무에 그리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