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랐던 고향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마산 수출 자유 지역이란 곳이 있었다. 출근길이면 공단 정문으로 몰려가던 수많은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누나들을 모았는지 혹은 모이게 됐는지는 몰랐지만 그 진풍경은 잊혀지질 않는다. 시골 가난한 부모와 공부하는 동생들을 돌보는 기특한 것들이라고는 했지만, 어른들은 그녀들을 '공순이'라 불렀다. 한때 근무자가 2만 5천명에 이르렀다는데 지금은 8천5백명 정도로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친구가 자취하던 소위 '비둘기 집'이라 불리던 양계장을 연상하게 하던 집에는 신갈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의 비슷한 또래 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방문 바로 옆에 있던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했었는데 친구가 게으른 탓에 연탄불을 꺼트리면 밑불을 서슴없이 넣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빨래도 해 준다고 자랑을 했었다. 그녀들을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도 부지런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지금도 근무자가 9만7천에 이른다고 하니 그 중 절반만 쳐도 5만명에 육박한다.
취업을 해서 봉천동 하숙생활을 청산하고 대림동 옥탑방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여의도 회사로 출퇴근하면서 항상 구로공단을 지나쳤다.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 단지로 거듭나서 아파트형 공장과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구로공단은 그야말로 검은 연기와 우중충한 공장들이었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오르고 내렸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공이란 말보다 공순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다.
그보다 더 오래전. 등하교 버스에서 만나던 안내양들도 있었다. 가끔은 우리들의 공짜 승차를 눈 감아 주기도 하고, 어르신 장 보퉁이를 실어주기도 하면서 채 닫히지 않은 버스 문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던 그녀들이 어쩌면 내가 처음 만났던 여성근로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우리의 오누이였고, 누군가의 딸이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겪었던 미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더구나 이민자의 나라였으니 노동현장에서 열악한 환경과 형편없는 임금에 시달려야 했던 여성 이민자와 노동에 동원됐던 아동들의 처우는 처참했었다. 1908년 3월 8일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뉴욕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온갖 탄압에도 굴복하지않고 마침내 1912년 새로운 노동개혁법을 제정하게 하는데 이른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아이들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 그녀들이 외쳤던 구호는 의미심장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이 아름답고 처연한 구호로 제임스 오펜하임은 시(詩)를 썼고(1911), 노래로 불렸으며 영화화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인간의 존엄성을 노래한 이 곡을 존 바에즈(John Baez)도 , 존 덴버(John Denver)의 목소리도 아닌 몰락하는 탄광촌의 여성들이 들려줬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 2014>에서였다. 극 중에서 한 여성이 " 남자도 우리가 낳았으니 돌봐줘야 해" 라고 말할 ㄸ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1910년대 '빵과 장미'를 외치며 "아이들에는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던 어머니는 1980년대에도, 그리고 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히 우리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모성애는 위대하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라 어머니에게서 세상을 배우고, 어머니품이 그리워 그 곁으로 간다.
어버이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대신해 이 세상 모든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머니. 당신들이 세상을 만들고, 손잡아 주고, 이끌어주셨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Bread and Roses》
As we come marching, marching, in the beauty of the day, A million darkened kitchens, a thousand mill-lofts gray Are touched with all the radiance that a sudden sun discloses, For the people hear us singing, "Bread and Roses, Bread and Roses."
As we come marching, marching, we battle, too, for men— For they are women's children and we mother them again. Our days shall not be sweated from birth until life closes— Hearts starve as well as bodies: Give us Bread, but give us Roses.
As we come marching, marching, unnumbered women dead Go crying through our singing their ancient song of Bread; Small art and love and beauty their trudging spirits knew— Yes, it is Bread we fight for—but we fight for Roses, too.
As we come marching, marching, we bring the Greater Days— The rising of the women means the rising of the race. No more the drudge and idler—ten that toil where one reposes— But a sharing of life's glories: Bread and Roses, Bread and Roses.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두컴컴한 부엌과 잿빛 공장 다락이 갑자기 드러난 햇빛을 받는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 빵과 장미”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우리는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들은 여성의 자식이고, 우리가 또 그들의 엄마이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착취당하지 않아야 하지만 마음과 몸 모두 굶주린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죽었다. 빵을 달라는 아주 오래된 그들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르며 외친다. 틀에 박힌 고된 노동을 하는 그들의 영혼은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면서,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여성이 봉기한다는 것은 인류가 봉기한다는 것. 더는 틀에 박힌 고된 노동과 게으름, 한 명의 안락을 위한 열 명의 혹사는 없다. 삶의 영광을 함께 누리자. 빵과 장미, 빵과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