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일으켰어도 정신이 덜 깬 상태라면 아침식사가 곤욕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자주 바나나를 식탁에 올려놓곤 한다. 가끔은 오이나 토마토가 놓였을 때도 있다. 바나나를 먹다보면 어릴 적 제사상에 올랐던 바나나가 생각난다. 그만큼 귀한 과일이었다. 삼형제 중 막내셨던 할아버지, 십남매중 막내셨던 선친 덕에 나는 집안에서 항렬이 꽤 놓은 편이었다. 고등학생 때 이미 할아버지가 됐다. 엄마 연배의 사촌 형수들은 제사상을 물리면 개구장이 '대련님'인 나를 위해 비싼 바나나와 이쁘게 가위질한 마른 문어를 따로 꼬불쳐 건네주곤 했다. 얼마 전 아내와 장을 보는데 바나나 8개가 달린 한 다발이 3,500원이었다.물가는 몇 배로 뛰었는데 바나나만 가격이 내린 셈이다. 그만큼 흔해지기도 했다.
우리보다 먼저 일본은 열대 작물인 바나나의 주요 수입국이었다. 그런데 필리핀의 한 여성이 일본 소비자 단체에 보낸 편지 한 통이 파문을 일으켰다. 바나나농장의 여성 농민인 그녀가 보낸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당신네 나라에서 먹는 바나나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아느냐. 그 과정에서 필리핀 농민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필리핀의 토종 바나나는 원래 크기가 작았지만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과일 다국적 기업이 땅값과 인건비가 싼 필리핀에 진출하면서 큰 바나나인 개량종을 심었다. 농장에 고용된 필리핀 농민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렸는데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병충해를 막느라 비행기로 농약을 뿌릴 때였다. 농약을 뿌릴 지점이 공중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농민들에게 바나나나무밑에서 깃발을 흔들어 표시하게 했던 것이다. 농민들은 농약중독으로 신음하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농약에 저항력이 강한 사람의 혈액형이 O형이라는 것을 밝혀 내서 O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을 골라서 깃발을 흔들게 하고 다시 농약을 뿌려 댔다.
이런 사실이 시민단체를 통해 알려진 일본은 불매 운동을 벌였고 그 주된 이유는 필리핀 농민의 비참한 현실 때문이라기보다 바나나에 뿌려대는 농약의 유독성 때문이었다. 부패를 막느라 익지도 않은 파란 바나나를 농약에 담가 수출하고, 수입국에 도착해서는 카바이트로 익히기까지하니 독극물을 먹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렇게 일본 수출길이 막힌 바나나가 한국으로 밀려 든 시기가 1908년대다. 한국에서 바나나가 싸고 흔해진 이유다. 마트에 널린 바나나에 붙은 상표 선키스트, 델몬트가 대표적인 미국의 과일 다국적기업이다. 우리 농민들이 키운 작물은 그들에게 가격경쟁력부터 밀리니 버틸 재간이 없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종이다. 원래는 여러 품종이었지만 필리핀 사례처럼 무성생식에 의한 개량종으로 바뀌어있다는 뜻이다. 특정 전염병이 퍼질 경우 바나나가 멸종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GMO벼를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우려할 만한 기사가 나왔다. 이미 시장에서 우리 나라 토종 작물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바나나처럼 종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생태계 혼란을 야기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일을 다른 나라보다 앞서 한국이 시도한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식용유를 만드는 콩에서부터 영화관람의 동반자 팝콘까지 이미 우리 식탁은 유전자 변형 식품이 장악했다.
제초제에 강하고, 성장이 빠르다는 것은 자연의 산물이 아닌 돌연변이라는 말이다. 이 분야에선 거대한 GMO 다국적 기업 몬산토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베트남전에서 악명을 떨치던 고엽제와 DDT로 성장한 회사다. 이미 한국의 1,3위 종묘회사인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했다. 한국 GMO작물 재배의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토종 밀, 콩, 옥수수를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야하는 실정이 될 지도 모른다. 노르웨이 북단에 있는 스발바르섬에는 100만종에 이르는 종자 샘플을 보관하는 세계 종자보관소가 있다. 인류 최후의 날을 대비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벼, 옥수수,보리 참깨등 31개 작물 1만3000여개의 종자를 보냈다. 내전으로 인해 씨앗이 대거 사라진 시리아는 다시 씨앗을 찾아가기도 했다. 우리라고 해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에 31개 토종 작물만 있는 것은 아닐테니 더욱 걱정스럽다.
나는 한국이 필리핀처럼 농업에서마저 힘센 강대국에 종속되기를 원하지도 않거니와 내 나라의 것을 다른 나라에 손을 벌려 되찾아오고 싶지 않다. 더욱이 유년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재 잡던 도랑과 미꾸라지를 훑던 논두렁이 뉴트리아와 황소개구리로 드글대는 현실은 끔찍하기까지하다. 베스와 불루길이 점령한 하천을 되찾으려는 노력만큼이나 내 나라 내 민족의 먹거리를 지키는데 공을 들여야겠다. 군인들이 지켜야만 했던 국경이 무너진지 오래인 지금. 깨어있는 농민의 굵은 손마디에 나라의 존폐가 달렸다.
농사일이라고는 모내기철 못줄을 잡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잠시 가꾸던 주말 농장 경험밖에 없는 내가 무슨 자격이 있을까만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응원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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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종자은행은 1926년에 설립한 러시아의 파블롭스크실험국입니다. ㆍ 그곳의 과학자들은 1942년 러.독전쟁으로 레닌그라드가 고립되어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조국인 러시아 농수산업계의 영구적 손실이 올것이라고 생각해 자신들의 방에 있던 벼 품종이 담겨있는 수천에 달하는 주머니들을 건드리지 않은채 굶어서 숨졌습니다. 그 숭고함에 고개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