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로 이름난 피지라는 섬이 있다. 이곳에 날짜 변경선이 있는데, 한 장소에서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다는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 경계선을 가랑이 사이에 두고 한 발은 어제에 나머지 한 발은 오늘에 두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그네도 있다고 들었다. 과거와 오늘을 오간다는 의미겠다.
그런다고해서 48시간을, 이틀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때로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그 어딘가에, 날짜변경선같은 그 어느지점에서 양 발을 딛고 싶어한다. 그래서 때로는 한 발을 들어 과거에 무게를 싣고, 또 어느 경우에는 미래에 있고 싶어한다. 그 뿐만 아니다. 좌와 우, 위와 아래 보이지않는 임의의 선을 그어두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확인 받고 싶어한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과거에도 있었고,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내가 있고, 큰 변고가 없다면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머무는 지점이 현재인것만은 분명하다.
정치인은 제 편을 나누려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그네를 탄다. 좌우로 흔들려선 떨어지니 그 밧줄만 움켜쥐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 자신이다. 학자들은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려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하고 과감하게 미래를 건너갔다 오기도 한다. 책임에서 자유롭다 여기는듯 하다. 언론을 진실을 전한다면서 진실을 만들기도 호도하기도 한다. 보지 않는 권력에 심취해 정작 존재 이유를 잃은 것이다. 그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의도에 있다. 가치와 양심에 따른 것이냐 자신의 처세와 양달을 위해서인가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후자인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정치가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이 그러하고, 학자들이 4대강을 두고 견해를 달리하며 이전의 주장이 수그러들기도, 재점화되기도 하는 것이 그러하다. 언론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보도 행태가 바뀌는 것또한 새삼스럽지 않다.
법을 만든다는 자들이 그 법 어기기를 주차딱지 받는 것보다 더 쉬이 여기고, 학자가 양심 팔기를, 언론이 거짓기사 쏟아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흔들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갖 필부에 지나지 않는 나로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그래서 어쩌쟈는 얘기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철저하게 내 편이다. 내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지말았으면 한다. 내가 답하고, 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너무 많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이 넘쳐난다. 지나간 일을 되돌리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아는 것은 인간 영역 밖의 일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하고,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며.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려 할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나는 그 모든 것에 경계인이다. 시간과 이념, 계층에 이어 경계인이고 싶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 누군가가 경계를 그어뒀다한들 그것은 분명 나의 것이 아니다. 내 경계선은 가랑이 사이에 두고 있고, 다행히 내 눈은 좌우에 달려있고, 고개들어 땅과 하늘을 볼 수 있다. 굳이 한 발을 들어 흔들려야 할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한 쪽 눈을 감아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외눈박이로 살고 싶지 않다. 땅만 보고 걷느라 막다른 벽에 부딪치지도, 하늘만 쳐다보며 방향을잃고 싶지 않다.
두 눈을 부릅 떠 정면을 바라보고 내 두 다리는 땅을, 머리는 하늘에 두고 쉼없이 걸으려 부단히 애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