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야 몇 번 들락거린 경험이 있었지만 검찰이라니... ' 방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 내민 직원이 전해 준 핸드폰 속 남자의 목소리는 짐짓 차분하다.
"네...그렇습니다만...."
"대치동 ㅇㅇㅇ백화점에서 선생님 카드로 ooo만원이 결제가 됐습니다....그런데..." 익히 모두가 아는 스토리다.
한창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리던 시절. 나는 직원들에게 그런 유사한 전화. 예를 들어 검찰, 경찰, 세무서등 무서운 곳에서 온 전화는 모두 내게 돌리거나 전화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하루에 2건을 처리한 적도 있다.
그날따라 무척 바쁜 날이었다. 그렇지만 으레 그래왔듯 성실(?)하고, 끈기있게 응대했다. 대개 이런 전화는 그들이 원하는 마지막 지점까지 3단계정도 거친다. 물론 상대도 바뀌고, 직급도 올라간다. 중간에 의심을 하는 듯한 질문을 하거나, 상대방 전화번호를 물어서는 안된다.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물었다고 급하게 채면 놓치기 마련이다. 현금 출납기 앞으로 달려가는 마지막 클라이막스까지 이끄는 게 중요하다. 내 방 전화기는 인터폰을 겸하고 있어 현금 출납기 버튼 소리를 대체하기에 안성마춤이다. 핸드폰 속 남자는 숫자를 일러주고, 나는 연방 인터폰 버튼을 누른다. 나는 계속해서 화면에 OK싸인이 아닌 에러 메세지가 뜬다고 대답한다. 몇 번을 거듭하니 목소리에 짜증이 섞힌다.
이윽고 내가 "이제 그만하자"는 말로 그들에게는 실망스러울 결말을 짓는다. 잠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욕짓거리를 해댄다. 상관없다. 굳이 훈계를 하지는 않는다. 소용이 없다는 걸 익히 알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그제서야 시계를 본다. 1시간 30분 남짓 소요됐다. 현금 출납기 앞으로 뛰어 갔어야 할 시간까지 포함해서다. 다시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에 다른 일도 봤으니 그리 아깝지는 않다.
" 왜 그런 전화를 굳이 받으시려하고, 마지막까지 응대를 하십니까?" 회식을 하는데 직원이 물었다.
"그들의 시간을 뺏으려고 그래. 모르긴해도 그 시간동안은 내게 집중할 거고, 다른 피해자가 한명이라도 줄지 않겠어? 그 피해자는 대부분 노인분들이나 순진한 사람일테니..."
SNS를 하는데 최근들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친구 신청이 잇따른다. 세계적으로 내 명성(?)이 널리 알려졌음이다. 그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로 성실하게 신고를 해준다. 다소 절차가 있고, 간혹 귀찮을 때도 있지만 걸르지 않는다. 유명세(?)는 치러야 하는 법이다. 그녀들이 혹은 그 배후가 내 아들, 딸에게도 추파를 던질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이에게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호기심을 못이겨 그녀들의 미모에 홀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이기적이다. 그 인기(?)를 독차지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은 수고롭지만, 흔쾌히 감당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