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리고 오늘

명패

by 문성훈

" 안녕하세요 여기는 oo동 주민센터인데요..."

지난주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찾아와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데 내가 굳이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날이 오늘이고 이 물건을 수령했다.
나는 '국가유공자'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순간은 군 제대를 불과 2달 앞둔 시점에 찾아왔다. 통합병원에서는 의가사제대를 권했다. 지나온 청춘의 2년여 시간이 원통해서,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않아서 원대복귀와 만기제대하겠다고 우겼다.
그동안의 진료기록과 진단서 원본은 내가 보관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억울해서였지 않을까싶다.

그렇게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20여년을 감추고 살았다. 아내는 결혼 후 10여년이 지나고서야 알게됐다. 지금도 자신은 사기결혼 당했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돌아보면 남모르는 사연이 많았다. 숨기고 살았으니 복학후 장학금혜택은 물론 (부모님께 죄송하다) 취업에서도, 예비군 훈련까지 일반인과 같았다.
정작 곤혹스러운 건 직장생활 동안 매년 치르는 건강검진이었다. 그때만큼은 온갖 꾀를 짜내고 변칙적인 수단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내 사업을 하게되고, 아이들이 다 컸을 즈음 가족에게 밝혔다. 그리고 유공자 신청을 했다. 그날 이후 20여년이 흐른 후에...
그렇게 또다시 세월이 흘렀다.



보훈청을 찾았던 그날을 기억한다.
" 심사과정이 엄격한데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통상은 1년) 그리고 유공자혜택은 소급적용이 안된다"는 직원의 설명에
"알고 있다"며 그동안 보관해 온 내 진료기록과 진단서를 건넸다.
20여년전 그때 그대로 와이셔츠 박스 안에 담겨있던 서류들은 누렇게 색이 바래 있었지만 타이핑 자국과 직인은 선명하기만 했다.

서류를 뒤적이던 직원의 동공이 커지며
"아니 제가 근무한지 17년째인데 이렇게 완벽한 서류는 처음 봤습니다. 그것도 원본으로...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왜...?"

옆 창구에서는 아까부터 어느 부자가 찾아와 시끄러웠다. 아들이 방위 근무를 마친지 얼마되자않아 증세가 나타났는데 왜 유공자대상이 안되냐고 아버지가 항의하는 중이었다.
나는 직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공자 선정은 이례적으로 빨랐었다. 그 서류 덕분이라고 했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생각해서 신청했다. 그동안 나는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않았고, 세금은 커녕 범칙금 한번 밀린 적 없었다.
불편할 때도 있었고,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극복했다. 내 힘으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기에 가능했다. 감사한 일이다.
나 한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만큼 어느 쪽방 구겨진 몸을 뉘어야만 하는 진정한 영웅의 가난한 유족이나 후손에게 돌아가리라는 믿음과 위안이 스스로를 격려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


큰아버지는 낙동강 전투에서 박힌 파편조각들을 끝내 다 꺼내지 못하셨고, 선친과 나 역시 우여곡절 끝에 병역을 마쳤다. 아비의 성정을 잘 아는 아들은 유공자 자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해양대학에 입교했다. 대학을 정하기 전 아들은
"아빠 아무래도 저는 눈이 안좋아 바라시는 해병대는 못갈것 같애요"라고 했다.
"이 나라 남자라면 군대는 반드시 가야한다. 반드시 보낼거다"라는 평소 아비 말이 엄포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어서다.



그래도 부끄럽고 오그라든다.
멸문을 각오하고 멸족을 당하면서도 가산을 털어 이 나라를 지켰던 선열의 후손들이 기구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안착시키려 모진 고문과 억압을 온 몸으로 감내했던 진정한 영웅들을 알기에 죄송하다.

나는 '애국'을 외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애국은 가슴에 있지 입으로 옮기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지금 당신 모습은 어떤가? 라고..

나는 심장이 아닌 머리로 애국자 행세를 하고, 알량한 과거 행적을 내세워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외치는 자들을 경멸한다.

진정한 이 시대의 애국자와 민주투사는 드러내지 않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내 이웃이고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거리의 이름모를 시민이다.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고 숨겨진 영웅이다.

찾아뵙고 명패를 붙여드리겠다는 주민센터 직원의 안내에 손사래를 친 이유는 그 분들께 죄송하고 부끄러워서다.
나는 현관문에 붙이지 않을 거다. 그대로 간직할거다. 그날의 상처를 오래도록 감추고 지냈던처럼...

ㆍㆍㆍ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위에 서 있습니다. 국가유공자의 헌신과 공헌에 보답하고 사회적 예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명패를 달아드립니다."
늦었지만 칭찬하고 싶다. 세금은 이런 데 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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