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혀

by 문성훈

아내가 맥주를 사왔다, 편의점에서 파는 맥주가 아닌 세계맥주를 종류별로 사왔다. 식탁에 둘러앉아 샘플러를 하고 각자 취향대로 마시는데 딸이 "오랜만에 다 모였네"라며 좋아한다.

문득 얼마 전 TV예능에서 봤던 영어만 쓰는 고도리장면(김수미,탁재훈,이상민이 나왔는데 엄청 웃었다)이 생각나서
"지금부터 영어로만 대화하는 거다. 시작! "이라고 했다.
모녀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다이어트에 대한 대화(English Coversation)를 끊임없이 이어가는데, 아들은 거들고, 나는 시종 과묵하게(?) 노가리를 찢고 멸치 대가리를 떼어냈다.

노가리가 너무 질기고 단단했던 모양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윗 치아 하나에서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꺼끌한 느낌도 그렇고 걱정도 돼서 목구멍 가까운 안쪽이라 어두운데도 폰으로 찍었다. 확대해 보니 둥근 피자에서 1/8 조각을 떼어 낸 형태로 떨어져 나갔다.
피가 난 것도 통증도 없으니 주말을 보내고 치과를 찾으면 될 일인데 자꾸 신경이 쓰여 그 치아를 혀로 더듬고 연방 사진과 비교하다 깨달았다. 눈보다 혀가 더 예민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틈새를 혀가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것이 1이고 뇌가 9를 담당하니 실은 뇌가 보는 게 맞다. 혀가 그 미묘한 차이 가령 날카롭고, 파인 구석까지 그 굴곡을 너무도 선명하게 연상시켜 주는 게 신선한 충격이다.

치아는 탈이 나기 전까지 그 은밀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응당 입으로 들어온 것이면 반사적으로 저작을 하는 정도로만 여기기 마련이다.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한다면 건강을 해치고 최악의 경우에는 생명까지 위협한다.
작은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갔을 뿐인데 은연 중에 혀로 더듬고 있다. 떨어져 나간 부위가 껄끄럽기도하고 패인 구멍에 자꾸 혀끝을 밀어넣고 살피게 된다.
'설마 뽑자고는 안하겠지...'
아이든 어른이든 치과라는 장소가 주는 공포감은 영원하다. 왠만한 통증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나지만 이를 갉는 공구의 모터 소리 ,심지어 침을 흡입하는 소리에도 반응한다. 그만큼 고통과 연관된 부위기도 하다.



세상살이라고 별 다를까.....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문제와 희노애락의 감정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며 산다. 국가가 그렇고 조직이나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길 뿐 어디 한 군데 제대로 작동이 안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 중요성를,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도 안되는 어떤 집단이나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그렇게 이해한다. 없어도 될 것만 같은 퇴화된 송곳니나 잘 보이지도 않는 목구멍 근처의 치아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소용없는 것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조각 하나 떨어져 나갔을 뿐인데도 이렇게 신경 쓰이는데 그 중 하나가 빠졌다면 어찌 되겠는가?
각각 제 나름의 역할이 있어 서로를 기대 물려있고 빼곡히 채워져 있을 것이다.
틀니를 하고 있었거나 임플란트를 경험한 사람은 안다. 빠진 이 하나 때문에 양쪽 치아가 기울고 흔들린다. 그렇게 하나가 세 개가 되고 다섯개가 되다보면 마침내 수습할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한다.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그렇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혀로 햩아 연상하는 그림이 더 정확하고 생생하다는 사실을 잊지않기를 바란다.
내 눈마저 미덥지 않은데 카메라 렌즈를 탓해서 무엇하랴?
우리의 감각을, 가슴을 믿고 따라야 한다. 요즘들어 문명은 발달하고 첨단 기기는 양산되는데 선진국을 바라본다는 우리나라의 카메라 성능은 되려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아니,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문제다. 초점도 못맞추고 앵글은 제멋대로이며 심지어 과장하고 지워서 조작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혀로 훑고, 감각을 믿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을, 카메라를, 그들을 믿어선 안된다.

ㆍㆍㆍ

외국발 난제들로 정부가 해결에 골몰하고 국민이 팔을 걷어부치고, 국내에 산적한 문제들이 이익집단의 저항으로 혹은 계층간의 이해 관계로 얽혀 시끄럽다.
어느 것 하나 뽑아야 할 치아는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다만 조각이 떨어져 나간 그 구멍에 음식물이 끼어 썩지 않게 조심할 일이다.
그대로 방치하다 뽑아야 할 지경에 이르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가끔은 떨여져 나간 조각 틈새로 파고드는 세균같은 무리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한시바삐 치과를 찾아 소독하고 다듬어 메워야 한다. 내 치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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