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금요일 아침 7시에 가지는 모임이 있다. 2년 반정도 됐는데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빼먹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지혜와 지식'이란 주제가 테이블에 올랐다. 다양한 연령, 나이, 경험에 따른 얘기가 오갔는데 나는 '지혜는 마음에 지식은 머리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내가 생각컨대 지혜는 동네 우물에서 퍼내는 물과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똥기저귀를 빨던, 마시건 변함없이 맑은 물에 무언가가 섞인다는 차이만 있지 물 그대로다.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쓰임새를 타박하지도 않는다. 모든 걸 품고 제 몫을 다하고 받아들인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지만 막상 없다면 그처럼 아쉽고 절실한 것이 없다. 바닥에 찌끄려지더라도 흘러 흘러 돌에 부딪치고 창포에 잠시 머물면서 다시 본연으로 돌아가 땅으로 스며 정화되고 다시 우물로 모인다. 우물은 마르지 않는다.
지식은 도서관에 꽃인 장서와 같은 것이다. 어디에 꽂혔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명확하고 유용한 것이 없다.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을 수록 그리고 다양하게 많이 보유하고 있을 수록 힘이 되고 경쟁력이 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요구 사항이 새분화되고 넓어질 수록 더 많은 책을 구비해야 한다. 서가도 늘여야 한다. 서가에 책이 많은 사람을 지식인이라 부르고. 특정 분야에 꽂인 책이 특별히 많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세월이 묵을 수록 빛을 발하는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간에 밀려 개정하지 않으면 비교의 대상은 될 뿐이다. 그 자체로 회귀하여 다시 먼지를 털고 귀하게 쓰이는 경우가 드물다. 활자로 굳어져 있기에 그 자체로 변화를 꾀하거나 정화되지 않으니 그 상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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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지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한다. 지식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경우가 많고 미래조차 불확실하다.
지혜는 선악을 다루기보다 양심에 주목한다. 지식은 선악을 분별하고 법에 휘둘린다.
지혜는 예기치않은 상황에서도 실수하지 않지만, 지식은 자주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다.
지혜가 응용이라면 지식은 공식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유연하고 지식은 견고하다.
지혜는 은근하고 지식은 강렬하다. 지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향이 있고, 지식은 스스로를 내세우고 선명하다.
지혜가 실루엣이라면 지식은 투영한 유리와 같다. 그래서 지혜는 남는 것이고 지식은 담는 것이다.
지혜는 스스로 터득해야 하고 지식은 교육을 통해 전수된다. 그렇다고 지혜를 나무라고 가르치려 들어선 안된다. 서로의 영역이 다를 뿐이고 겹치기도 해서 상대적이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지켜보고 느끼고 체험해야하기에 다분히 감성적이다. 지식은 알려주고 기억해서 사색하게 하는 것이어서 이성적이다. 지혜의 온도는 36.5도이고 지식은 얼기 직전처럼 차갑다.
우둔하고 공부도 짧아서인지 나는 지혜를 좋아하고 갈망한다. 냉철한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을 좋아하고 철저한 준비보다는 결과의 파장에 민감해서 일 수도 있다.
지혜는 마음을 움직여 사람을 바꾸고, 지식은 사색하게 해서 세상를 바꾼다. 지식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사람도, 지혜를 지식으로 전하는 훌륭한 사람도 많은데 다행히 깜냥은 있어 내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