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라

by 문성훈

이리저리 채널을 휘두르다 캠핑하는 프로가 걸렸다.
한때 요정으로 불리던 걸그룹이다. 출연진보다는 벽장 속에 묵히고 있는 캠핑장비를 펼쳐 본 지가 오래라 '아이 캠핑'이라도 즐길 심산으로 멈췄다.

모닥불을 쉽사리 피웠다.
한동안 멍하니 모닥불에 시선을 꽂고 있던 한 멤버가 말했다.
"모닥불은 인디언의 TV래~"
불꽃이 조용히 흔들리고,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희나리위에서 살풀이춤을 췄다.
이후 대화는 귀담아 들을 것이 없어 껐다.

'인디언의 TV' 란 단어만 남았다.

'나의 TV'는 무엇일까?
내게도 그런 TV가 있다. 사무실에는 산 형태의 바위 조각을 구해다 만든 테라리움 유리탁자가 있고 집에는 수초 수족관이 있다. 출근하면 커피 한잔을 뽑아 아무생각 없이 탁자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퇴근하면 식탁의자를 끌어다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바깥에서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오래된 나름의 루틴인데 아무도 그 시간만큼은 방해하지 않는다.

사무실을 찾은 방문객과 나 사이에 그 유리 탁자가 놓여있다.
대부분은 신기해하거나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라 용건보다는 이 TV 얘기로 얘기 실마리를 풀어간다. 의도하지 않은 쓰임새가 생긴 셈이다.

언제인가 그 유리 탁자 안을 들여다보던 손님 한 분이 '무엇'이나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했다.
"이걸 왜 만드셨습니까?"

"내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같아서요"

바위에 이끼를 붙여 산의 구릉과 계곡을 만들고, 물을 좋아하는 작은 이파리 식물을 착근시켜 나무를 대신했다.
비록 자연이 아닌 펌프로 끌어올린 물이지만 폭포가 되기도 하고 계곡물이 되어 이끼와 식물의 갈증을 달래준다.
그렇게 강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한 수반으로 흘러내린다.

태양을 대신한 LED램프와 저소음 팬이 타이머에 의해 밤과 낮을 구분하게 하고 바람을 일으킨다. 바깥만큼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광합성을 하고 습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작은 물고기나 새우에 의해 탁해진 물은 펌프로 끌어올려져 이끼와 식물뿌리에 수분을 공급하고 거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에 의해 걸러져서 다시 흘러내린다.

대류고 순환이다. 그렇게 작은 생태계를 만들었다.



어떤 날은 바다위에 떠 있는 독도를 연상하고 또 어떤 날은 태백산 능선을 타는 내 모습이,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누군가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든다고 설명했다.
그 분이 그랬다 나답다고....
그때 다시 여쭙지도 못하고 넘어가서 명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엉뚱하다는 뜻인지 혼자있기를 즐기는 나를 알아채고 한 말인지 말이다.

아무튼 다행히 내게는 '나만의 TV'가 있다.
멍 때리기 그만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어른의 '바보상자'가 아닌 피터 팬의 '보물상자'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날개가 돋아 날아다니기도 하고, 계곡에 숨어지내는 로빈 훗이 되기도 한다.

숨구멍이다. 그리로 머리를 들이밀고 숨을 쉰다.
TV를 꺼라 그리고 '당신의 TV' 를 켜라.

무한채널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를 가지길 권한다. 그마저 여의치않다면 책갈피 속에 몸을 누이고 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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