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윤회(輪廻)

by 문성훈

80년대 후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강원도 어디쯤에 있는 모부대에서 군복무중이었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건물은 없었고 다방과 여관, 시외터미널 그리고 외출 나온 장병과 면회객을 위한 고만고만한 술집, 당구장, 식당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휴가나 외박을 앞두고 바지주름을 베일듯이 세우고 파리도 못앉을만큼 광을 낸 군화를 발치에 두고 잠드는 날 밤은 장가가는 것만큼 설레고 더디게 가기 마련이다.
군 장병에게 외출, 외박은 휴가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여서 종교행사나 일요일이면 입대 전 무교였던 장병은 종교를 가지게도 하고(?) 종교와는 상관없이 만약 부대 밖에 교회가 있다면 신실한 교인이 되게도하고, 더 멀리에 절이 있다면 당분간은 불교신자로 개종하게도 했다.
되도록 지긋지긋한 부대를 멀리 벗어나고 싶은 바램과 그리 다를 게 없는 바깥 공기를 쐰다는 것이 잠수했다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에 비할 만 하다.

그런 외출이 그리고 외박이 전면 금지된 적이 있었다.

사달은 갓 전입한 육사출신 소대장에서 비롯됐다.
장교이니 외출은 자유로웠을 터인데 그 사정은 모르겠으나 어느 날 외출에서 그 동네 청년들에게 두들겨 맞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정확히는 방위로 복무중인 이들이었는데 일설에는 당구장에서 시비가 붙었다고도 하고 소위 계급장을 고깝게 본 그들이 시비를 걸었다고도 했다. 훈련받은 군인이 민간인을 못당해 낸 것이기도 하고 장교가 방위에게 망신을 당한 것이기도 해서 부대입장에서는 작지만 작지만은 사건이었다.

정작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후속조치다.
그 일대가 위수지역(특정부대가 관할하게 지정된 지역)이라 평상시에도 부대장의 위세가 미치는데도 가해자에 대한 헌병의 사건조사도 없었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도 같았다.
단지 사병을 비롯한 장교, 하사관의 전면 외출, 외박금지 조치만이 내려졌을 뿐이다.

이번 주에는 다음 주쯤이면...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갑갑함은 더해갔다.
그러다 일대 주민들이 항의를 하고 피켓을 들고 나섰다. 군인들의 외출,외박을 허용하라는 시위였다.
그 지역 경제는 군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모든 상가와 숙박업소들이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 이어지니 그럴 만도 했다.
급기야 사단장 면담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후로도 외출,외박 금지 조치는 계속됐으니까... (더구나 그의 권한이다)

어떻게 수습이 됐냐고?
"궁금하면 5~ 00원...."까지는 필요없다. 결론을 말하려든 참이니까.
묵묵부답에 요지부동인 사단장이다보니 그 동네 유지들이 가해자 청년들을 앞세워 찾아왔단다.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며 찾아와서 피해자인 소대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렇게 마무리가 됐고, 외출,외박 금지 조치는 풀렸다.



일본의 경제제제 조치로 시끄럽다.
촛불 시위 불빛이 일본 열도까지 미쳤을테니 한국민은 감당하기 어렵고,
아무래도 만만하지만 목소리를 내기 쉬운 국내기업 먼저 두들겨패려는 심산처럼 보인다.
청와대의 입장은 견고해 보이는데 일부 여론과 국민이 문제다.

그때도 그랬다.
일요일. 내무반에서만 뒹굴어야 하니 고참 몇명이 애꿎은 졸병들만 괴롭히다 그도 여의치않으면
"병신같은 소위 두들겨 맞은 게 우리하고 뭔 상관인데 피해를 입어야 하냐"고 불만을 터트리고, 졸병들 시켜 소원수리할 때 외출 외박 보내달라는 내용 쓰라고 윽박질렀다.

일요일이 나가기 싫어 집에서 뒹굴어서인지 그때가 떠오른건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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