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옛날 이야기

by 문성훈

어릴 적에 여인숙을 하는 주인댁 2층 건물 1층에 살았다.
우물이 있는 마당을 두고 다른 한 집도 세들어 있었는데 그 집 딸이 나와 동갑이었고 위에 오빠 둘이 있어 우리는 곧잘 어울려 놀았다.

그 집 아저씨는 건장한 체구에 호남형이셨는데 지금으로 치면 건축 현장 인부로 당시엔 그냥 '노가다' 나간다고 했다.
아줌마는 하얀 피부에 말이 없고 자상한 분이셨다.
언제나 발단은 술이었고 문제는 여자였다. 어른이 되어 엄마한테 들은 얘기지만 들쑥날쑥 수입도 변변찮은데 바람끼까지 있어 어지간히 아줌마 속을 썩혔던가보다.

아저씨가 술을 한잔 걸치고 온 다음날이면 아줌마 눈두덩이에 멍이 들어있었다.
그런 날이면 우물 두레박을 올리시는 아줌마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가끔은 스카프를 하고 계실 때도 있었다.
엄마가 마실 나가고 없을 때는 불러서 점심도 챙겨주시고 참 착한 분인데 어린 마음에도 안쓰러웠다. 어른들 일이라 모른 척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몇 십년이 지나 우연히 고교 선배이기도 한 그 집 아들을 만났다.
세 남매가 다들 잘 커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했다. 그 형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사기업 전무였다. 반갑고 뿌듯했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셨다. "아줌마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 "애들이 엄마를 닮아 다 성품이 좋았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그 집 형들 덕에 동네에서 맞고 다닐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마당을 마주보고 같이 산 덕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식구의 개념은 그렇게 포괄적이고 넓었다. 우리는 한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는 심정적으로는 한 식구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변변찮은 수입에 가난한 살림이지만 그 아저씨가 벌어다주지 않으면 자식을 키울 수도,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었을테니 아줌마 그 조그만 몸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셨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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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건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본이 준 돈 덕이 크지 않느냐고, 35년 일제강점기에 철도, 도로 놓고 공장, 학교 지어준 덕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작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일본인이 그런 말을 해도 혈압이 오르는데 한국인 거죽을 둘러 쓴 토착왜구들도 그런 말을 입에 담는 모양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집 아저씨가 생각난다.
몇 푼 안될망정 돈을 벌어다주니 마음껏 주먹을 휘두르고 바람을 피워도 당당했던 그 아저씨가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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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 일찌감치 돌아가셨단다.
아줌마는 아직 건강하시고 자식들 효도받으며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사신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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