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행이다 2

글 쓰기

by 문성훈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한참을 건너 뛴 게 글쓰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글짓기를 가르치시던 첫사랑 곰보 여선생님의 칭찬에 목말라 여기저기 대회에 기웃대며 상을 타 본 이후로 일기조차도 초등학교 졸업이후로는 써 본 적이 없다.

2. 글쓰는 즐거움
2년 전 고향 후배의 부탁으로 초중학생용 진로 탐색도서의 대표감수를 냉큼 승낙한 것이 계기가 됐다.
'건축가'편이니 전공이고 해오던 일이라 쉽게 보고 덤볐다가 낭패를 봤다. 어쩔 수 없이 전문 용어를 써야 하는데다 읽을 대상이 아이들이다보니 몇 번을 고쳐도 어려운 문장이 되기 일쑤였다.
덕분에 쉬운 말을 찾아쓰고 읽을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줍잖은 식견으로 거들먹거리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도 알게 됐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작년에는 생각치도 않게 책을 내는 만용을 부렸다. 만용을 부렸다기보다 그리 되었다. 3~4년전부터 그야말로 낙서하듯 SNS에 쓴 글을 읽고 출판사 대표가 찾아왔다. 몇 개월을 사양하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낸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당연히 섣부르고 이르다 조언해 줄 것을 예상했는데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이미 써서 올렸던 글을 고르고 나름대로 다듬어 엮은 책이 작년에 펴 낸 "거북이가 된 고슴도치"다.
돌이켜보면 무모했다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 될만한 일이다.
서점에 꽂힌 내 책을 보게 볼 때, 그리고 스테디셀러를 상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어찌어찌 흘러오고 등 떠밀린 글쓰기인듯 싶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글을 쓰는 게 즐겁다.
담배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말이라면 다시 붙잡아 앉힐 수도 없거니와 잠시 머물다 사라지니 한결 마음은 가볍다. 그런데 담배가 그러하듯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을 주고 병들게 할 수도 있다.
거기에 반해 글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야 만다. 그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한 두번은 채로 거르고 붙잡아 다듬을 수 있으니 깊숙히 패이는 상처보다는 묵은 때를 벗기는 개운함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말은 때로 마약이 되어 판단을 흐리게도 하지만 글은 술처럼 달 뜬 기분으로 귀기울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말이 메탄올이라면 글은 에탄올이다. 말이 탁주라면 글은 소주다. 여기서 소주는 희석식이 아닌 증류식 소주를 일컫는다.

보거나 듣거나 읽어서 모은 글 재료인 쌀에 내 머리에서 나온 효모로 발효시켜 소줏고리를 통해 내리는 소주가 말이 되고 글인 것이다.
은근한 불에 달궈져 주둥이에 이슬처럼 맺혀서 귀하게 떨어지니 로주(露酒)라고도 한다지 않는가. 불은 경험과 사색을 땔감으로 한다.

처음 떨어져 모은 소주는 버린다. 탁한데다 메탄올 함량이 높으니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것이 말이다.
나중에 떨어지는 소주가 향기나 목넘김이 좋고 숙취도 없다는 제대로 된 소주다.
그것이 곧 글이다.
은근하게 불을 때야 한다. 센 불에 소주를 내리면 떨어지는 소주의 양은 많지만 알코올 도수는 낮고 불순물이 많아 역한 냄새가 난다.
사람이 뱉는 말이 그와같다.
소주는 여러 번 걸러낼 수록 맑고 순도가 높다. 당연히 글도 그러하다.
은근한 불로 여러번 내려야 한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좋은 소주를 내리는 이치다.

좋은 쌀이 아닐지도 모르고 효모가 어느정도일지 모른다. 불을 제대로 못다뤄 아직은 탁할 수도, 도수가 약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러번 내려 맑은 로주(露: 이슬 로, 酒: 술 주)같은 글을 쓰려고 한다.

이슬같다지만 뜨거운 인고의 시간을 거쳐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모아야만 한다. 안간힘을 쓰며 삐져나와 힘겹게 맺힌 다음에야 맑고 순도 높은 글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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