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행이다 3

세상 보기

by 문성훈

그 자리를 AI에게 내주고야 말았지만 기사(棋士)는 바둑판에서 우주를 본다고 했던가.
물리학자는 작디 작은 원소에서 만물의 근원을 찾고, 수학자는 세상 이치를 숫자로 풀어낸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학시절 포커에 흠뻑 빠져 사람을, 감히 세상사는 법을 깨쳤노라 자만했던 적이 있다.
다들 자신이 그리는 우주 안에서 자기만의 논리로 자기 멋에 겨워 산다.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고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러하므로....

3.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다.
한 배에서 났어도 동생은 나와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적어도 부모 품을 벗어나 온전한 어른이 되고나서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성적만으로 연극영화과를 들어갈 수 없었다.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다 포기하듯 군대를 들어갔고 제대후에 가진 첫 직장이 남다른 기회가 됐다. 타고난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차려 성공을 일궈냈다.
지금은 영화제작 관련 회사를 차렸다.

동생은 의사를 상대로 하는 회사를 운영했었다. 당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의사다"였다.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동생 눈에 비친 의사는 지식인으로 대우받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고, 고된 일과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불쌍한 노동자였다.
달리 사업이 성공한 게 아니다.

월급쟁이 일 때도, 결혼을 해서도 강남을 떠나지 않는다. 돈을 벌려면 돈이 몰린 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라면서 부모보다 무서워하던 형인 내게 "나는 돈이 된다면 남의 발바닥도 핥을 수 있어. 그런데 형은 안되잖아 그래서 형은 사업하면 안돼"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래도 지가 타고 다닐 자가용을 사며 형보다 크고 비싼 차라서 양해를 구하고, 제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몰래 다녀오려 애쓴다.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을 제 몸같이 끔찍하게 여기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조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공기 탁한 강남 한복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사는 탓으로 아토피가 심한 것 같아 속이 상한데도 뭐라 하지 않는다.
동생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다.



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인테리어 분야에 있다보니 젊은 시절부터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속 삶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생각을 엿 볼 기회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정이 유별나서인지 기름지고 넘치는 그 삶을 부러워하거나 쫓으려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상사보다는 경비원 아저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좋아했다. 지하철 역 노삿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는 할머니와 야쿠르트 아줌마 그리고 소박한 이웃의 삶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움켜 쥐지도 않는 구름 그 위보다 바다 심연에서 건져 올릴 것이 많다고 여기며 산다.

다행히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데다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남달리 유별난 경험과 이야기거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굳이 발꿈치를 들어 키가 커보이게도 하고 싶지도, 고개를 숙이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높이에서 내 시선이 미치는 거기까지,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애써 망원경을 들이대며 살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나보다 모자란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의 말과 글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존경받을 만 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미치지 못한 데 머물고 있을 바에야 내 생각을, 내 삶을 얘기하고 즐기며 산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늘 무지개가 뜨지도 않지만 언제나 어둠을 밀어내며 새벽이 온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우주 안에 머물기를 원한다.

기꺼이 갇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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